지역에 회복적 정의 교육 통해 평화 일구는 피스빌딩센터

평화는 너와 내가 함께 오르는 산행,
회복적 정의 배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도 ‘평화’ 교육

‘뭐든지 괜찮아, 서로 배움, 느리게 만나기’…
환대, 존중, 배려 경험으로 평화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꽃, 바람, 구름, 선인장, 캥거루… 뭐, 여기까지는 무난하다 싶은데, 새싹, 시냇물, 배추흰나비, 나무늘보, 민들레홀씨? 과연 이걸 맞추라고 제시한 걸까?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의 등 뒤에 붙어 있는 단어들을 용케 알아맞혔다. 친구들이 단어를 맞힐 때마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아이들은 박수치며 깔깔깔, ‘민들레홀씨’를 맞추자 ‘우와~’ 하며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아이들이 자신이 볼 수 없는 등 뒤의 단어를 척척 맞힐 수 있는 건 다른 친구들의 도움 덕분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서로 등 뒤의 단어를 설명하는데 규칙은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 어려운 단어일수록 많은 친구들을 만나야 하고 상대방의 몸짓, 표정, 눈빛에 집중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다. 때로 진심은 말보다 그런 몸의 표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봄기운이 무르익어가는 날, 두빛나래 평화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은 경기도 부천 원미구의 ‘진달래동산’에서 활짝 핀 봄꽃에 둘러싸여 서로를 통해 ‘평화’를 배우고 익혔다. 내 곁의 친구와 눈 맞추고 함께 웃으며 환대, 존중, 배려를 경험하는 시간, 아이들은 ‘평화는 전쟁의 반대’라는 막연한 이해를 넘어 삶에서 평화를 살아낼 힘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었다.

# 평화를 배우는 학교?

두빛나래 평화학교는 지역에 ‘회복적 정의’를 소개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경기도 부천의 역곡 남부지역에서 2017년 4월 출범한 피스빌딩센터(대표 남태일)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화교육이다.

‘두빛나래’는 평화를 이루는 두 날개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평화를 배우는 곳이다. 대상은 초등학교 1~6학년까지 저학년과 고학년 두 반으로 나눠 10명씩 함께한다. 학교라지만 프로그램은 대부분 놀이다. 말과 글로 배우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두빛나래 평화학교는 ‘몸으로 배운다’는 방침이다. 평화는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나 자신, 가족, 이웃과 함께 이뤄가야 할 소중한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평화를 배우고 그것의 중요성을 경험한 어른들을 통해 아이들에게까지 평화 배움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두빛나래 평화학교의 교사 6명은 모두 피스빌딩센터에서 회복적정의 워크숍과, 청소년평화전문 과정, 갈등 조정진행자 과정 등을 수료한 ‘엄마’들이다. 자신이 경험한 평화를 혼자만이 것으로 두지 않고 지역을 위해 실천하기로 나선 것. 두빛나래 평화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은 회복적생활교육연구소(소장 정진)와 협력해 교사들이 교육안을 만들어 진행한다.
올해로 3년차인 두빛나래 평화학교,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입시위주의 교육 속에서 어느 순간 놀 권리를 잃어버린 아이들, 이곳에 오면 따뜻하게 맞아주고, 다양한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배를 든든히 채워줄 간식까지, 그야말로 신나는 시간이다.

단지 노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평화학교에서는 처음엔 서로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 자신을 표현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방식을 다루고, 공동체 안에서 나눔의 의미를 알아보며 책임, 존중, 배려를 알아가도록 하는 등 놀이의 모든 주제는 ‘평화’를 향해 있다.

늘 활동의 시작과 끝에는 ‘서클’ 즉 동그랗게 모이는데, 그때 원의 중앙에 중요한 핵심 단어를 놓아둔다. 이번 평화학교는 ‘뭐든지 괜찮아, 서로 배움, 느리게 만나기’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진행하고 있다. 모든 활동의 목적인 셈이지만 그마저도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그저 갈등상황에서 상기시켜줌으로써 평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두빛나래 평화학교 교사 김상옥 씨(43)는 “평화는 갈등상황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출발한다”면서 “‘뭐든지 괜찮아, 서로 배움, 느리게 만나기’는 다름을 인정하고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게 한다”고 세 가지 키워드에 대해 설명했다. 평화는 나만 괜찮은 게 아니라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을 때 유지될 수 있는 것을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워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다름이 받아들여지고 ‘괜찮다’고 인정받는 경험은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평화 배움의 효과, 어른도 아이도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인 한정효 씨(39)는 아이가 “엄마가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며 자신의 변화를 자녀의 말로 대신 답했다. 평화를 배우기 전에는 기분대로 아이에게 반응하고 “엄마 말대로 해”라며 권위적이었는데 그런 모습이 폭력이라는 것을 평화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이다.

평화학교에 참여하면서 거친 말투가 줄어들었다는 6학년 백민서, 평화를 꼭 배워야 하느냐고 물으니 “서로 자기 식대로 하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겠냐”고 반문한다.

아이들은 평화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싸우지 않는 거요” “고운 말을 쓰는 거요” 심지어 “맛있는 떡볶이를 먹는 거요” 하며 나름의 이해를 꺼내놓았다. 어른들의 이해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었다.

교사들은 평화에 대한 정의, 이해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평화는 함께 이루는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 평화를 살다, 지역이 살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공동체에 문제(갈등)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 처벌 중심의 엄벌주의(응보적 정의)’ 한계를 넘어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추며 당사자들의 맥락이 드러나도록 공동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모든 제도적, 문화적 노력의 과정이다.

회복적 정의를 함께 배움으로써 지역에 평화를 심는 피스빌딩센터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회복적 정의 워크숍(1~4과정)을 갖고, 초등학생들에게는 두빛나래 평화학교에서 몸으로 배우는 평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회복적정의 워크숍을 수료한 회원들의 정기모임과 아빠들의 모임인 ‘서클하는 아빠’ 등의 활동을 펴고 있다.

지역민이 함께 만드는 평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피스빌딩센터, 그 구심점 역할은 교회가 했다. 경기도 부천의 어.울림교회는 일명 도서관교회이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의 도서관 ‘언덕 위 광장’은 주일에는 어.울림교회의 예배처소이고 주중에는 주민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도서관이다.

어.울림교회 담임 남태일 목사(48)는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동네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도서관을 시작했고, 회복적 정의 교육은 구체적인 실천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남 목사는 “회복적 정의는 인간의 권리와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존중의 방식이고 피스빌딩센터는 그것을 배우고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함께 자라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아직 시작단계라 어설프고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있지만 남 목사는 “평화는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손잡고 올라가는 과정 자체”라면서 “전쟁의 반대로서 평화의 개념보다 더 나아가 내 옆에 있는 이웃과 어떻게 평화롭게 살아갈지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주변이 주황빛으로 물드는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끝이 없다. 이날 마지막 활동으로 자신이 직접 꾸민 바람개비를 들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바람개비의 날개를 움직인다. 그렇게 아이들은 그득한 평화의 기운을 만끽하며 꽃나무 사이사이를 힘껏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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