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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셀 양을 바라바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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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호] 승인 2019.06.12  2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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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일간지에 은퇴 신학교수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대속자 그리스도는 예수 이전의 구시대의 유물”이라 하여 유대 이스라엘의 전승을 예수께서 친히 선택한 대속론인데 이를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 하였고, “예수는 로마 압제에 저항하다 정치범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로 결론내리고 있었다. 신구 기독교 역사 속의 십자가 신학의 핵심을 다루기에는 한정되고 편향될 수도 있는 수준인지라 크게 시비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판형 신문 한 면을 다 사용했기에 작은 지면도 아니다.

원로교수의 이 같은 내용은 18세기 말 이후 계몽 사상가들이 꺼내들기도 했고, 유럽의 19세기, 20세기 동안 현대신학 또는 해방신학, 또 한국식 변형 자유주의 신학으로도 많이 지적해오는 내용이지만 때가 때인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사람의 신학적 경향은 구약과 신약의 단절형으로 대속신앙을 구시대의 유물이라느니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대속사와 별개로 로마식 정치범의 죽음으로 치부하는 언행을 안타깝게 여긴다. 신학적 견해이니까 그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이삭의 모리아 사건을 완성한 대속신앙의 승화인데 그 원로학자는 예수를 바라바로 착각하고 있었다.

바라바는 누군가? 빌라도가 유월절 특사로 예수를 방면하겠다 하자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선택했었다. 바라바야말로 로마제국을 향한 정치투쟁을 하다가 잡힌 혁명가였다. “대속신앙”은 유대 이스라엘이 역사 위의 예수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합작하여 성취한 인류 구원의 유일 방편이다. 대속신앙을 묘사한 상징, 그 알레고리 형 사건은 아사셀 양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는 사실이다.

아사셀 양, 그 이름도 아름답거니와 그의 형용은 그 수양이 등허리에 인간의 죄악을 가득 짊어지고 유대사막 저 멀리로 간다, 그 양은 사막 저 끝에서 늑대나 광야의 미친개들의 밥이 되어 죽어가는 양을 말한다.

한국교회 어느 구석에는 대속신앙을 부인하는 무서운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은 동시대에 우찌무라 간조를 냈을 때 한국에서는 그의 제자들 몇 명이 “대속은 무슨 소리 제 죄 제 놈이 감당해야지” 했을 때 그걸 복음으로 아는 사람들이 서양식 자유주의와 혼성을 이루어 한국교회를 골병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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