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 승 준 작가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 그때의 감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서울시 광진구 능동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어린이대공원이 개장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참석한 이날 개원식 장면은 텔레비전으로도 중계되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이날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들이 공짜로 어린이대공원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어린이대공원은 그야말로 광활한 신천지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나는 동화 속 세상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저녁때가 다 됐어도 되돌아 나가기가 싫었다.

한강만 한 놀이터도 드물었다. 겨울 강추위가 몰아닥치면 한강은 매번 꽁꽁 얼어붙었다.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이들은 썰매를 가지고 강으로 모여들었다. 강북에서 강남까지 한강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며 썰매를 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널빤지 등을 주워 모아 책상다리하고 앉을 만한 공간을 만든 다음 밑에 가로로 기둥 두 개를 나란히 박고 철사를 휘어 붙여 날을 만들었다. 긴 막대기 끝에 못을 거꾸로 박아 지팡이 두 개를 마련하면 그 해 겨우내 썰매 탈 준비가 끝난 셈이었다. 여름 무더위 때면 뚝섬유원지에 한강수영장이 개장을 했다. 안전요원들이 설치해 놓은 선 안에서만 물놀이를 하면 됐기에 수많은 아이들이 한강으로 몰려왔다. 우리는 항상 팬티만 달랑 입고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잠수도 하고 개헤엄도 치고 다이빙도 하고 조개도 따다 보면 유행가 가사처럼 하루해가 금방 저물었다.

어린이대공원도 좋고 뚝섬유원지도 좋았지만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건 여름성경학교였다. 방학을 하고 나면 곧바로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 예배를 드리고 분반공부를 하고 가끔씩 간식을 먹던 평소와 달리 여름성경학교 때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간식도 주고 밥도 줬으며 신나는 놀이와 찬송이 이어졌다. 예배 때나 분반공부를 할 때 떠들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지만 여름성경학교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여간해서 야단을 맞지 않았다. 새벽에 모일 때도 있어 빠짐없이 참석하다 보면 하루 종일 예배당에서 살다시피 해야만 했다. 선생님을 졸라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단체로 뚝섬유원지를 찾아 보물찾기도 하고 한강수영장에 들어가 헤엄도 치며 놀았다. 색다른 반찬이 나온 것도 아닌데 예배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는 밥은 무슨 조화에선지 그 맛이 정말 꿀맛 같았다. 

부활절하고 성탄절만 달랑 예배당에 나오던 아이들도 여름성경학교 때는 예배당에서 죽치고 앉아 개근상을 받아가기도 했다. 그러고 나선 개학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성탄절 때까지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장 열광했던 건 영화나 환등기를 볼 때였다. 주로 저녁때 예배당에 모여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면 불을 다 끄고 어두워진 상태에서 영화나 환등기가 상영되었다. 강단에는 영화 스크린처럼 커다란 흰색 천을 걸어두어 동영상이나 사진이 비치도록 했다. 영화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외국 영화이거나 성경의 내용을 줄거리로 하는 만화 영화일 때가 많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타이거 마스크’, ‘황금박쥐’, ‘우주 소년 아톰’, ‘요괴인간’ 같은 건 틀어주지 않았다. 환등기는 낱장 슬라이드 필름을 자동으로 돌아가게 해서 그림이나 사진 등의 자료를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영화와 달리 화면이 움직이지 않았고 음성도 들리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 꽤 인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특별한 게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여름성경학교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을 그 시절 여름성경학교로 데려다 놓으면 좋다고 할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이들에게 재래식 여름성경학교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는 여름성경학교가 열렸던 그때 그 예배당이 어떤 기막힌 놀이시설이나 현란한 워터파크보다 뛰어난 진정한 의미의 ‘멋진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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