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 상상 속에 몰입을 하게 될 때, 그것이 현실이라면 내가 스스로 죽어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유트브를 여니까 “내게 소리 안 나는 총이 있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원로 서양사학자이면서 유신과 5공 군부독제 때는 저항의 논객으로 인기 상한가를 누렸던 그분이, “내게 소리 안 나는 총이 있다면…” 그것으로 손볼 사람이 있다는 표현을 하는데 저 어른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런 말을 할까 하여 안타까웠다.

필자 역시 이 좋은 때 아주 일찍, 7살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10대가 끝나기 전부터 다중을 상대로 설교하고, 때로는 부흥회도 인도하면서 마치 천하가 내 손안에 있는 것처럼 휘젓고 다니기도 했었다. 아마 천사가 저렇게 생겼을거야 하면서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싶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기도 했었다.

그런데 칠십 고개 마루턱에 온 지금, 요즘은 가끔씩 만약 나라가 북조선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악몽에 사로잡힐  때는 더는 못살겠지. 그럴 때는 하나님 아버지와 상의를 하든지 아니면…, 나의 인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을 못 견디며 살아 숨을 쉬는 것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는 총소리 나지 않는 총이 있어도 차마 타인을 죽이지 못하고 나 자신은 부끄러운 부잣집 큰아들처럼, 잘난 맛에 뽐내면서 살았던 바리새인이나 엣세네 사람들처럼, 또는 기독론 싸움에 쉴 날이 없는 기독교인들처럼 세월만 허송했구나 하면서 조용히 사라져버리지 않고는 부끄러워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1963년 박정희 윤보선이 대통령 선거할 때부터 “부익부 빈익빈” 투쟁이 시작되었다. 72년 유신 독재가 시작될 무렵부터 부의 축적과 지성과 양심의 불균형을 걱정했었다. 7,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쫓겨 다니고, 숨어 몸을 피하고, 집단생활을 한다고 하는 소문도 들리고, 신분을 속이고 공순이 공돌이 노릇을 서슴지 않는다 할 그때, 한국교회가 그들의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되어 주었으면 어땠을까? 지학순 주교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이들이나 적극적인 불가의 승려들만큼이라도 교회가 운동권 친구가 되어주는 때가 있었더라면 운동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선진 형으로 바꾸어가는 용사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무지 재작년 5월의 긴급 대통령 선거가 믿어지지 않는다. 그건 또 그렇다 치고 겨우 41% 득표를 한 과반수 미달 득표를 한 정권이 마치 혁명집단처럼 행세하고, 삼권분립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공공언론이 존재하는지 도무지 새라고는 대한민국에는 앵무새밖에 없는 것일까.

무조건 내가 잘못 살았다. 이 결론이 맞다. 내가 예수처럼 용기 있게 살았어야지. “들소리”라는 근사한 간판을 걸어놓고, 그게 새소리냐 매미 소리냐고 비웃어도 할 말이 없고, 설사 잠꼬대냐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죽음이라는 말도 헛소리일거다. 죽을 놈이 죽는다고 소문내던가.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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