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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터, 할아버지 역사 바로 잡히길”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 12일 ‘양화진 역사 바로 세우기’ 공청회서 주장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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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호] 승인 2019.08.14  13: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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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봉인 장로 손자며느리인 최지연 사모가 8월 12일 공청회에서 설명하고 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 터가 할아버지 최봉인 장로의 소유임을 확인하고 지난 7년간 그것을 명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고 최봉인 장로가 60여 년 묘역을 돌보다 세상을 떠난 것을 안 후손들은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를 설립, 8월 12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한국교회 양화진 역사 바로 세우기’ 공청회를 가졌다.

100주년기념재단과 최 장로 후손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으려 했으나 이날 공청회는 100주년 기념재단 측의 불참으로 최 장로 후손들의 주장만 있었다.

기념재단 측은 선교사업회 측에 보낸 공문을 통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명백히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의 소유임을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에 의해 인정받았으며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변경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소위 고 최봉인 장로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으나 본 재단은 이에 대응할 이유와 가치를 알 수 없다, 공청회 개최에 동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날 후손 대표로 나선 최봉인 장로의 손자며느리인 최지연 사모(시애틀베다니교회, 샛별한국문화원 원장)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요구는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주가 최봉인 장로였다는 것, 그것을 후손들이 헌납했다는 것을 써달라는 것고, 100주년 선교기념관을 최봉인 기념관으로 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념재단 측은 “개인이 공적 기관을 향해 할 수 있는 요구가 아니다”며 “무례한 것”이라고 공문을 통해 답했다.

국가 외교 문서인 ‘외아문 일기’ 내용을 근거로 후손들은 양화진 땅이 감검관 최봉인 장로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기념재단 측은 4년 전 공문을 첨부하면서 입장이 변함 없음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최지연 사모는 기념재단 측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기념재단 측에서 보내 온 공문 내용을 반박했다.

기념재단의 ‘감검관이 산 땅은 100자에 70자가 가까운 약간 세모난 땅이라 했지만, 관할청장 홍현택이 조사한 바로는 감검관이 산 것은 사실이나 둘레가 불과 수십보 밖에 되지 않아 상반된 이야기’라는 주장에 대해선 “외국인들이 척간하는 자와 관할청에서 척간하는 보의 차이를 서로가 몰랐다. 관할청 나졸들은 국가의 명이라 수천 평이나 수만 평이 되는 것으로 느꼈는지 수십보가 너무 작았다”면서, “그러나 100자에 70자는 약 200평이고, 1보가 182센티이니, 둘레가 50보이면 역시 200평으로 같은 크기”라고 반박했다.

‘“앞이 국유지라서”라는 문장의 귀결이 애매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누군가의 대지나 전답이 아니라 국유지라 뭐라고 문장을 정리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면서 “당시는 카메라나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기에 글로 정리, 정확하게 문장의 귀결이 어렵다는 설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 사모는 “문서마다 감검관이 샀다는 것은 승인한다고 했고, 원문에 매득(買得)이라고 썼다”며 “사들인 것은 사실이라고 문서마다 기록되어 있고, 문서에 내부대신 이재순 직인이 찍혀 있다”고 강조했다.

‘감검관이 최봉인이라고 이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마포구 합정동 144는 13개의 필지 중 유일한 대지로 그 땅에는 최봉인 장로와 후손들만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산 기록이 없다”면서 “양화진 묘지 관리는 1950년 6월 24일까지 최봉인 장로 외에 다른 사람이 없었고, 60년 동안 하인, 소작인들과 관리했으며 일제하 선교사들이 모두 쫓겨 간 이후에도 500개가 넘는 묘를 관리했다”고 밝혔다.

‘최봉인 장로가 묘지에 살면서 관리하며 매달 돈을 받았기에 주인이 아닌 묘지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감검관 최봉인 장로는 죽을 때까지 60년 동안 그 땅에 살았다. 1984년 백주년이 들어와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집을 허물고, 선교관을 지을 때까지 95년 동안 그 땅에 산 사람이 최봉인 장로와 후손 밖에 없다. 다른 감검관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지연 사모는 “바른 역사를 세우고, 선교관이 세워진 본래 목적대로 쓰여지기를 원하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 같아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절차를 강구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길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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