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윤 식
주님앞에제일교회 담임목사

요나는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음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요나는 바다 가운데서 주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큰 폭풍을 만나게 되었다. 사공들은 두려워했고, 이 재앙이 어찜임을 알아보고자 제비를 뽑게 되었다. 마침내 요나는 자기로 인하여 이 폭풍이 일어나 여러 사람이 죽음 앞에 놓이게 됨을 고백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 1:12).

이후에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바, 주 하나님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 요나가 삼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서 고난당하다가, 그는 마침내 다시 니느웨를 구하는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요나는 니느웨의 무너짐을 선포함으로써, 니느웨 왕을 회개하게 하였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재앙을 면하게 하였다.

 작금의 혼돈의 시기에 요나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요즘만큼 죄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또한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조직신학적 관점의 죄를 논의하는 것이 아닐 진데, 일상적인 형사, 민사, 혹은 도덕적 죄와 관련한 부분에서조차 사회적 합의를 이뤄지지 못하고, 진정한 죄의 기준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혼돈스럽지 그지없는 상황이다. 누구의 죄는 죄의 저촉 여부의 판가름을 떠나서도 무조건 천인공로 할 대역죄인일 때가 있고, 누구의 죄는 이미 양형량이 큰 죄임에도 그의 무죄를 부득불 주장하기도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죄가 아닌 줄 알고 살아왔던 일이, 새로운 기준의 판가름으로는 확실한 죄가 되기도 한다. 합의한 바 없다하고, 억울하다 하고, 잘못된 팩트 임을 주장하게 되지만, SNS라는 인류역사상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양과 속도라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넘쳐나는 가짜 뉴스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러한 혼돈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들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인간의 이기성은 아담과 가인의 죄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철학자 칸트가 구분한  대로 인간의 이기성은 첫째, 논리적 이기주의, 둘째, 심미적 이기주의, 셋째, 도덕적 이기주의로 볼 수 있다. 논리적 이기주의는 언제나 항상 자기의 논리만이 맞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고, 심미적 이기주의는 자기감정과 느낌이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되는 것이며, 도덕적 이기주의는 자기 행동만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혼돈의 핵심에 자신이 있음을 고백하고 책임을 진다. 그는 도망자의 신세로 이방의 사공들에게 둘려 싸여 있을 때에도, 자신이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힘을 갖게 된다. 여호와를 경외한다 하면서 내 죄는 돌아보지 않고 남의 죄만 목에 힘줄을 세워 외치는 사람들은 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요나를 보며, 혼돈된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선지자 요나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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