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던 날,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떨어진 엠마오란 마을로 간다.
일시적인 여행이 아니라 아마도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짐을 보고 낙심해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 최종인 목사
평 화 교 회 담임

시를 읽고 가슴이 뭉클해 진 적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이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맞는 말이다. 지금은 차갑고 하얗게 식은 연탄재이지만 언젠가는 활활 타오르던 뜨거운 불덩이 시절이 있었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설교자로 살면서도 연탄처럼 성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반성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잘되는 교회는 성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무엇이 성도들을 뜨겁게 만드는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던 날,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떨어진 엠마오란 마을로 간다. 일시적인 여행이 아니라 아마도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짐을 보고 낙심해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얼굴빛은 '슬픈 빛'이었다. 현대인들 역시 두 사람과 다른 바 없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을 텐데 바로 그날(눅 24:13), 마음과 몸이 떠난다.

이 두 사람은 예루살렘 현장에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믿고 따랐다(눅 24:21). 그리고 제자들 그룹에 속한 어떤 여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부활을 목격하고 와서 증언할 때 놀랐다(눅 24:22). 또 제자 중의 두어 사람이 여인들의 말을 듣고 무덤에 갔다가 여인들의 말처럼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목격하고 전했다(눅 24:24). 그런데도 이들은 전혀 마음에 감동이 없이 쓸쓸하게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이다. 현대 성도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많은 말씀을 들어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이다(눅 24:25).

이들은 어떻게 가슴이 뛰게 되었는가? 여기서 교회가 할 임무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성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비결이 있다. 첫째는 동행이다. 주님이 그들과 동행함으로 가르쳐 주신 것처럼 교회는 성도들과 동행해야 한다. 성도의 삶 따로, 강단의 메시지, 교회의 정책이 따로 간다면 전혀 가슴 뛰게 만들 수 없다. 둘째는 말씀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이념이 아니라 성도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셋째는 주님의 열정 넘치는 교제이다. "함께 음식 잡수실 때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눅 24:30). 나는 지난겨울 <The Table> 테이블이란 책을 만들고 성도들과 나눈 적이 있다. 주님의 식탁 교제는 사람들의 눈을 밝게 하고 진리를 발견하게 했다. 우리들의 식탁에서 가정예배와 개인기도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사가 자기 일에서 행복과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멋진 경력은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한다. 멋진 경력으로 멋진 삶을 살지 못한다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어렵고 상대에게 영감을 줄 수도 없다. 많은 교회가 있다. 그러나 교회 모두가 성도들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 성도들과 동행을 잊고, 말씀의 진지한 전달도 없으며, 가정예배와 개인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 한국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가슴이 다시 한 번 열정으로 뛰기를 소망한다. 엠마오 가는 길에서의 주님을 묵상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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