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_36


1. 객관적 이해를 위하여

요한복음 1장 19절부터 예수의 시대가 시작된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예수의 생애는 1장 19절에서 12장 50절까지는 “표적의 장”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20장 31절까지는 영광의 장, 또는 “죽음의 장”이라고 대체로 표현한다. 어떤 학자는 11장 57절까지를 “표적의 장”으로 이해하고 12장은 표적과 영광(또는 죽음)의 갈림길로 보기도 한다. 표적의 장은 예수님의 자기표현을 하심이고, 13장에서 20장까지는 최후의 예루살렘 활동이 10여 일 동안의 기록으로, 12장 이전 기간 3년과 동등하게 비교되는 비중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 기록 분량에서도 절반씩이다. 3년 기록과 10여일 기록은 동등한 비중으로 이 복음서를 기록한 필자(요한)의 묵시적 강조 법에 독자들은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요한복음이 고도의 높은 수준을 지닌 문학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메시아의 “자기표현”은 “죽음동반”이요 “진리의 자기 행동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간 사랑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남(예수)이요, 그 사랑 값은 “죽음까지”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요한복음 해석을 가볍게 하려들지만 요한이 증거하는 복음의 모습은 단호하다. 하나님 아들의 “표적”은 곧 “죽음” 또는 그 죽음을 “영광”으로 표기하면서 “영”은 “부활”과 동의어로 제시하고 있다. 일단, 예수의 자기표현의 내용인 12장까지 탐색은 이미 출발점을 떠나고 있다.
 

2. 빌립의 동작을 보라

이튿날, 예수는 갈릴리도 나가셨다. 북방 갈릴리를 향한 하나님의 발길이다. 어제는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면서 구약과 신약의 만남과 그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암묵적으로 표현했다. 세례자의 제자 중 가장 탁월한 제자들임을 암묵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세례자 자신이 예수의 제자로 나선다는 의미를 담아 요한 자신의 상속자일 수 있는 제자들은 예수께 보냈다. 예수의 선으로 첫 번째 인물이 빌립이다. 빌립이 예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과정의 절차가 생략된다.

예수의 시간의 절박성의 표현일까? 아니면 빌립이 예수의 부름을 받게 되는 그 순간을 생략하고 빌립이 자기 동네 인물 나다니엘은 예수께로 인도하는 것으로 대체하는데, 이 과정은 빌립과 나다니엘의 부르심의 동시포장으로 표현하는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일까?
 

3. 동시 동작을 보라

빌립은 예수의 갈릴리행 길목에서 만난 제자다. 그는 예수의 부름에 매우 신속하게 화답했다는 느낌을 준다. 주 예수의 부름에 빌립이 어떤 동작으로 화답했는지에 대해서 요한복음 제자는 그 실제 모습을 생량한다. 그리고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것으로 빌립의 신앙고백을 대신하고 있다.

예수의 부르심에 빌립과 나다니엘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 과정을 필자는 “동시동작”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빌립은 예수의 부르심과 동시에 “전도(선교)”를 하고 있다. 전도와 선교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수준과 단계가 있다. 모법을 보일 뿐 아니라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설득시킬 능력을 함께 가지는 사람이다.

빌립은 잘 준비된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를 기다리는 나다니엘은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었고, 또 그의 행위(선택)가 적중할 수 있기도 했다.
 

4.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는 없다

나다니엘이 빌립의 전도로 예수를 만나는 순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아마, 구약전승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듯하다. 미구에 오실 메시아는 다윗동네, 다윗가문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준비된 제자였다. 그리고 그는 투명하고 솔직하게 자기 고백(실력)을 내보이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빌립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그가 이미 보고 확신하는 자신감으로 나다니엘에게 예수를 소개했다. 이론이 아니라 타인의 판단에 메달리는 사람도 아니다. “와 보라”였다. 행동으로 이론을 이끄는 신앙, 한 박자 빠른 속도감을 소유한 사람, 아주 투명하고 솔직한 예수의 제자이다.

와 보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하나님)를 보았다고 하신 예수처럼 빌립이 예수를 자기 온몸으로 증거하는 행위다.
 

5. 다시 말해도, 신앙은 행동이다

제 3의 시대, 곧 21세기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수준을 소원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온전) 하심 같이 완전 하라 하신 설교 앞에 이론이 아닌 자기 모습으로 설교를 대신하고 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시대를 말하자. 예수께서 자자들은 하나씩 둘씩 부르시는 과정을 눈여겨보자. 특히 요한복음 기록자의 문필 법을 주목하면서 말이다.

요한복음 기록자는 마을의 제자인 누가의 헬레니즘 식 표현법을 뛰어 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기록자는 현대의 문학적 기법과도 자격을 겨룰 수 있고, 보다 더 신비할 정도의 문학적 수사법을 동원한다. 다시 말하면 철학(신학)은 뛰어 넘고, 인문학 지식의 어깨 죽지를 밟고 서서 소설가(작가)적인 필력까지 동원하고 있음을 유념하면서 요한복음을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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