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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제3 개혁의 진원지다”나의 신앙 나의 예수 >5< - 종교개혁 502주년
조효근/본지 발행인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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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호] 승인 2019.10.16  14: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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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전체를 품어
하나의 종교요
하나의 나라를 요구하시는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는
종이나 노비의 시대를 끝내고
아들(자녀)의 시대를 부르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또 다시 십자가까지를
요구하고 계신다.

 

16세기 종교개혁 501년 되는 10월이다. 이제는 “때가 찼다”, 16세기 개혁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필자가 지난 50여 년간 기도하면서 정리한 21세기 개혁의 대안을 여기에 옮겨보겠다.
 

첫째, “만인 제사”론의 완성을 향하여

천하만인들이 주 하나님 앞에서 갖추어야 할 신앙의 결정체를 말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사 몸소 모범을 보여주신 예배, 곧 인격예배의 모범이기도 하다.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라, 다시 말한다 “완전”하라신 말씀을 따라서 이루신 십자가 신앙이다. 이는 바울이 그 가능성을 말했고, 루터가 몸짓으로 표현하려다가 한계에 부딪치기도 한 독생자 신앙이요 임마누엘 신앙이기도 하다. “만인제사 법칙”은 움직이는 성전을 말한다. 정착지에 머물러 있는 신앙은 예루살렘식이고 만인제사식은 예수의 방식이다. 곧, 움직이는 성전, 신자 하 사람이 성전과 교회를 대신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였다(사 7:14). 이 말씀을 따라서 바벨론 포로기 유대-이스라엘들은 바벨론 그발강가에서 번개처럼 소리치는 계시를 받는다. 그렇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말씀과 그 말씀의 경배가 있는 곳에 하나님 계시고, 그발 앞에 엎드리는 나는 곧 제사장이다. 이 놀라운 발견을 몸소 실행한 바벨론 포로기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모범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홀로 제사권을 행사하는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
 

둘째, 신앙은 하나다,
교회도 교단도 하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 단위의 조직 형태를 이루자. 출애굽 모세의 이스라엘 12지파 연합처럼 인구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12지파 공동체의 지도력처럼 한국의 프로테스탄트(기독교)는 각 교단을 지파단위로 계산하여 지파연합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각 교단들은 균형발전할 수 있으며, 세속국가나 사회 구성체 앞에서 교회의 권위있는 모범과 연합하는 힘의 균형으로 사회봉사를 해낼 수 있다. 국가조직과 교회조직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교회 내부로는 각 교단 교회들의 수준향상을 끌어올려, 모든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으로 목표지향할 수 있다.
 

셋째, 종교와 정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양면이다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세계교회가 대개 종교와 정치의 분리, 또는 분립을 말하고 있으나 이는 교회의 책임회피를 위한 면피성 논리일 뿐이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종교와 정치 분리를 말씀하신 일이 없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느냐 하는 문제로 바리사이들과 대화하실 때 말씀하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 하신 말씀은 정-교분리론이 아니다. 바리사이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정치와 종교, 또 종교와 정치는 본디 하나다. 다만 세속국가 속에서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지혜로운 방법으로 세속국가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종교는 밤에 하고 정치는 낮에 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자리에서 종교와 정치는 하나다. 유대 이스라엘이나 로마제국 시절에 교회가 정교분리를 강조했던 일이 없다.

오늘날도 종교, 곧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세속국가의 모든 정치행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지도하고, 그들의 안녕을 위한 축복과 기도로 대응하는 것이다.
 

넷째, 가톨릭(정교)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1교회 2교단의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중세기를 건너오면서 로마 가톨릭을 개혁하려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어느 누구도 로마 가톨릭에 분립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나쁜 전통의 교황권을 제거하고 지상의 모든 교회들이 근세사 진입을 위해서 나쁜 관습의 교회 풍습까지 바로잡는 개혁을 요구했을 뿐이다.

바야흐로 우주시대를 준비하는 때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교회가 서로 등지고 살면서 이단시비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구상의 모든 교회, 사도신경 고백 가까이에서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는 “하나의 교회”, “예수의 교회” 이름으로 하나여야 한다.

16세기 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부족, 또는 오랜 세월동안 로마제국, 게르만의 신성로마 제국기간을 살아오면서 비성경적인 관습 등 군더더기가 묻어있는 로마 가톨릭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기독교 구교인 가톨릭 등과 프로테스탄트 이름으로의 신교가 서로 간에 교리와 관습, 또는 신학적인 차이점을 가다듬고 신자가 대속신앙을 기준삼아서 하나의 교회,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이고, 거기에서 지역과 국가들간의 차이점은 토론과 학습을 통해서 일치시켜 가면서 제3시대로 돌입해야 한다. 21세기 미래시대는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이고 그 안에서 각 종단이 각기 특성을 살려가는 우호관계를 이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유대교와 이슬람을 우군으로
확보하고 셈족 신앙을 완성해 가야한다

세계기독교는 유대인과 사촌 관계이고, 이슬람과는 6촌 관계다. 세 종파는 모두 유일신 하나님 안에서 생존한다. 더 쉽게 말하면 아브라함의 혈통과 믿음을 승계 받은 하나의 종교에서 출발했다.

세계는 바야흐로 성숙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과 문화를 섭렵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모형의 종교를 일으킨 이후 유대-이스라엘을 거쳐서 유대교가 형성되었고, 그들이 성취한 메시아 사상은 메시아 예수, 그리고 그의 교회를 이루어 오늘의 기독교가 있다.

그리고 기독교가 셈족과 헬레니즘 사상을 거쳐 오면서 로마제국을 터전으로 삼았을 때, 아라비아에서 이슬람이 등장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은 서로 싸우고 죽이고 죽는 관계가 아니라 유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구인 모두를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때까지 연합형태를 이루어가야 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자손들 간에 갈등은 있었으나 서로 등 돌림은 없었듯이 기독교가 아브라함 가문의 가장 성숙한 종파이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손으로 유대교를 붙잡고, 또 한 손으로 이슬람을 이끌어 하나님의 완전한 품으로 이끌어갈 포부를 가져야 한다.
 

여섯째, 수도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수도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를 하늘나라에 준하도록 변화시켜야 할 기독교의 포부는 그 과정 속에서 별도의 희생이 필요하다. 예수의 생애를 보라. 세례자 요한의 생애는 물론 바울의 생애까지만 보더라도 개척시대 또는 변화의 시대에는 또 하나의 희생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의 삶을 모범으로 살펴라. 왜 주 예수는 홀로 그렇게 사셨을까? 아담의 타락 후, 또 그 아들 가인과 아벨의 살인극 이후 모처럼 셈족의 아들 아브라함 때에 이르러서 하늘나라 기준을 바로잡은 하나님의 법칙은 메시아 예수에게서마저 가정을 이룰 수 없는 희생의 조건을 감당하셨을까?

앞서, 다섯 고비의 기독교 행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사안이 없다. 자기희생을 통해서 인류구원의 한 길을 열자면 수도공동체를 통한 일꾼을 길러야 한다.
 

일곱째, 비폭력을 향한 예수 교훈을
회복해야 한다

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실 때 예수는 제자들의 경솔한 행위를 멈추게 하시면서, “칼을 거두라!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셨다. 결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살생이나 폭력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안에 언제부터 폭력이 용인되었을까? 겟세마네는 물론 골고다에서 누명을 쓰고 죽어가면서도 예수는 그들의 폭력을 침묵, 또는 비폭력으로 대응하셨다.

기독교 21세기 이후는 비폭력, 어떤 명들의 폭력도 정당화할 수 없다. 오른쪽 뺨을 치면 왼뺨까지 내주라 하신 말씀을 앞세우고 기독교 제3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상의 일곱 단계를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는 기독교 제3시대를 불러야 한다. 성경의 표현법으로는 예수 재림시대를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오실 때 예수, 우리들의 메시아는 이사야 7장에서 임마누엘을 제시하셨고, 바벨론 강가에서 성전이 아닌 회당, 개개인의 예배처에서 완전한 인간 온전한 신앙공동체 가능성을 보여주셨고, 이사야 40장에서, 그리고 53장에서 도 다른 모습의 희생양을 주셨다. 그리고 엣세네 운동을 비집고 세례자 요한을 주시더니 그의 동시대에 메시아 예수의 자기 모습 제시가 이루어졌다.

나는 “들소리 운동”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의 미구에 다가올 새 메시아 시대를 갈망하면서 이 소원을 말하고 있다.

조금은 이른 시간일까? 때 아닌 때에 나와서 내 몫의 고생을 더해야 하는가?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미명의 시간부터다. 동이 터오르면 벌써 듣는다. 새벽 닭이 울기 시작하면 때가 늦을 수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기는 하지만 하는 수 없다. 이 정도의 요구 앞에서도 필자인 나는 또 많은 추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구인 전체를 품어 하나의 종교요 하나의 나라를 요구하시는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는 종이나 노비의 시대를 끝내고 아들의 시대, 또는 자녀의 시대를 부르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또 다시 십자가까지를 요구하고 계신다. 편견에서, 아집에서, 자기 관습에서 벗어나서 그 부르심의 자리까지 달려갈 우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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