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매년 한글날에 계몽적 선언을 한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는다. 한글날에 모든 국가기관에서 일본어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한목소리로 성토하지만, 이때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8일 국립국어원이 꼭 가려 써야 할 ‘일본어투 용어 50개’를 발표했다. 매년 한글날이면 국어 관련 단체에서 일본어투나 외래어투 용어를 순화해서 사용하자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좀 특별한 것 같다. 지난 8월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에 대한 판결을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수출 절차가 한층 까다롭게 된 것이다. 이후 한국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넘어 일본으로 여행을 가지 않는 운동까지 벌렸다. 실제로 일본 지자체 중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전년도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든 곳도 있다.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일본어투 용어 50개는 일본식 한자어 20개와 일본어 음차어 30개다. 일본식 한자어는 구좌, 익일, 가불, 잔고, 고참 등이다. 일본어 음차어는 유도리, 나가리, 단도리, 와사비, 노가다 등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각각 계좌, 다음날, 선 지급, 잔액, 선임으로, 융통성, 무산, 단속, 고추냉이, 막노동으로 순화해야 한다.
우리는 ‘02-325-4973’이라는 전화번호를 어떻게 읽는가? 아마 대부분 ‘02 다시 325 다시 4973’으로 읽는다. 여기에서 다시라고 읽은 ‘-’은 영어 ‘dash’에서 온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 영어 단어 ‘대시(dash)’를 ‘다시’라고 읽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넘어와 우리도 ‘다시’라고 읽는 것이다. ‘02 대시 325 대시 4973’ 혹은 ‘02 에 325 에 4973’이라고 읽어야 바람직하다.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일본어투 용어 50개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본어투 용어는 많다.
‘이 일은 수순(→순서)을 밟아야 한다’, ‘망년회(→송년회)는 12월 10일에 하기로 했다’, ‘그 사람은 곤조(→고집)가 있다’, ‘이 상품은 삐까번쩍(→번쩍번쩍)하다’, ‘그 부부는 금실이 좋아 잉꼬(→원앙)부부라고 할 수 있다’.
또 ‘따불’은 ‘더블(double)’, 미싱은 ‘머신(machine)’, ‘마후라’는 ‘머플러(muffler)’, ‘빠꾸’는 ‘백(back)’, ‘나시(‘소매가 없다’는 일본어 ‘소데나시(袖無し)’에서 왔다)’는 ‘민소매’로 써야 한다.
언어는 습관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단어를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힘들다. 언어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매년 한글날에 계몽적 선언을 한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는다. 한글날에 모든 국가기관에서 일본어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한목소리로 성토하지만, 이때뿐이기 때문이다.
한글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어투를 사용한다. 좀 더 계몽적이지 않게, 습관을 바꾸는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
박상문
인물과사상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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