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탐구(탐색)_38 요한복음 1:51~2:1

요한복음 1장과 2장 사이는 모세와 예수의 만남,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의 만남이 있다, 또는 구약과 신약의 만남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야할 복음서의 순서에서 의미를 찾으려 드는 필자의 마음은 무겁다.

그동안 상당한 양의 시간과 열정을 가지고 요한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노력을 했으나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염려가 있다.
 

1. 요한복음을 헬레니즘의 아류로 치부하는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


어떤 이들은 요한복음을 헬라 신학의 선발대로 여긴다. 요한복음서는 로고스 언어의 한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 필자는 1장 해석을 마무리하고 2장으로 넘기려던 생각을 중단하고 1장과 2장 사이의 거리를 잠시 생각중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 것이 1장과 2장 사이에서 생각 하나를 확인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기록자 자신도 아마 복음서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오해를 의식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1장에서 2장으로 건너가는 순서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 전체 분량이 넉넉하지도 않은데 1장이 2장 앞에 배치되는 것이나 또 21장 내용도 20장과의 자연스런 연결로 보기에는 무리를 느낀다. 베드로에게 너 나를 사랑하느냐고 거푸 3회나 반복 질문을 던지는 의미가 아가페와 필리아의 차이점을 구분하기 위해서만 일까? 또, 21장 25절은 마치 중복과 의외성을 주는데 굳이 그 마지막 절에 붙여준 것이 매끄럽지 않다는 언어 흐름상의 느낌이다.
그렇다면, 1장과 2장의 의미를 포함하여 요한복음 기록자는 어문학적 통례나 그 기법까지 모두 동원하여 기록자 자신의 생각을 가능한 부분까지 찾아다니며 감추는 작업을 한 것은 아닐까 까지도 생각해 본다.
 

2. 1장과 2장의 이어쓰기 의미는?

요한복음서의 사상적 고향은 히브리 고유의, 그것도 언어의 신비를 터득한 사람들의 수준 따라서 해독하도록 배려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장 내용은 구약 전체의 요약이다. 특히 1장 1절에서 18절까지는 구약 히브리 전문가들 수준에서 이해하고 표현하는 내용들이다.

또, 모세와 예수를 동일선상에 배치하는 것이나 요한복음 6장에서도 모세의 신명기 18장 15절을 언급하시며, 모세와 예수의 간격을 비교하면서 요한복음의 구약사상과의 거리와 간격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세가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희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 찌니라’(신 18:15).

모세의 이 표현 ‘나 같은 선지자 하나’ 또는 ‘너희는 그를 들을 찌니라’를 주목하자. 모세 이후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모세 같은 선지자를 ‘그 선지자’로 표현하고 있다. 세례자 자신은 물론 세례자에게 네가 메시아가 맞느냐고 추궁할 때 유대인들은 <그 선지자>를 4복음서 곳곳에서 거론하고 있다. 이는 모세 자신은 물론 요한복음 기록자 또 세례 요한까지도 메시아는 모세나  메시아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고 보았던 것일까?
 

3. 지금 필자가 암시하는 내용을 주목해 주기를…

모세와 엘리야, 엘리야와 말라기 선지자,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간격과 거리, 표준과 수준, 영적인 서로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얼마간 고민을 해봄이 좋을 것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모세, 세례자 요한, 또 예수가 모두 똑같은 존재라는 것입니까? 성급한 이들은 이와 같은 짜증스런 질문을 하고 싶겠으나 참으시오. “진리”는 성급한 짜증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문 내용의 오늘 분량 속에서 우리가 함께 이 글을 읽지만 우리 모두는 그 개개인이 “하늘”이요 또 “그 사람만큼” 소중한 이들이니까 스스로 삼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4. 예수는 1장을 떠나서 2장으로 갑니다

1장과 2장이 동급이고 구약과 신약이 하나이면서도 “또 다른 하나”입니다. 우리 요한복음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은 따로 있습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 앞서 밝혔듯이 “요한복음”은 아직도 66권속 에서 그 자신의 속내를 다 밝히지 않고 있는 책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은 말이나 논리, 이데올로기 나열로 자기제시를 하지 않고 또 그런 따위들을 질색하는 성격을 가졌어요. 특히 헬레니즘 따위는 평생에 단 한 번 경험하는 것이면 좋겠다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2장입니다. 갈릴리나 모세, 세례자들과도 결별하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자기 길을 가면서 우리는 혼인집 가나에서 예수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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