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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목회자의 자존감 -
김영한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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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호] 승인 2019.11.13  14: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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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17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18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도다“(합 3:17-19)

 

   
 

지난 9월 예장 통합측 총회에서 명성교회 문제가 다루어졌는데 다시 세습을 허용하는 것으로 수습 안이 제안되었고 이에 총대들은 이 안을 받아들이는 이변(異變)이 일어났다. 이는 총회가 대형교회의 결정에 굴복하여 1년 전 세습반대를 결의한 자체의 헌법과 결정을 스스로 번복하는 총회의 자기모순을 드러내었다.

세습에 있어서 개척교회라든가 시골 작은 교회의 경우는 혹 헌법에 어긋나더라도 예외적인 경우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명성교회의 경우에는 한국교회에 세속주의가 들어와 목회자 총대들이 대형교회의 물질 공세와 권력적 탐욕에 굴복한 것에 아닌가하는 교계와 사회의 비난이 야기하는 것이다.

총대 목회자들이 진정한 목회자적 자존감이 있었다면 총회의 세습금지법 준수와 이에 따른 세습반대 결정을 번복했을까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1. 하박국의 자존감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은 물신(物神)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목회자의 자존감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 의하면 하박국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 가나안의 종교의식에 빠져 풍요의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들었다. 바벨론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적인 무서운 곤경의 시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구원을 확신하므로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의 주님으로 찬양하고 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감에 소가 없을 찌라도”(17절)
 

이 구절은 예언자적 청빈성을 말해주고 있다. 하박국은 이러한 세상적인 궁핍과 결핍에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사회적인 평판이란 무성한 무화과나무의 소출, 풍성한 포도나무 열매의 소출, 풍성한 감람나무의 소출, 우리에 많은 양, 외양간에 많은 소 소유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의 청빈한 영성은 이러한 세속적 기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에 대한 일반적인 세속적인 기준으로 한다면 많은 교인 수, 큰 교회당, 교계와 사회에서의 높은 지위와 결재하는 수많은 일, 운전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 매주일 교회가 걷는 엄청난 헌금액수, 많은 월급 등이 외형적으로 목회자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외면적인 크기가 목회 성공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종교적인 성공이고 그는 세상적인 번영신학적인 측면에서는 성공한 종교인일 수 있다. 만일 목회자가 이러한 세상적인 평가 기준에 의하여 자신이 자존감을 갖는다면 이는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종의 상과는 거리가 멀고 평신도와 사회가 기대하는 목회자 상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2. 목회자는 한국교회 내에 들어온 세속주의,
   성공과 번영주의에서 돌이켜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의 자존감은 우리 사이에 자본주의 영향으로 들어온 물신(物神)주의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다. 세상적인 번영주의와 성공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 물신주의는 가나안의 풍요 신 숭배의 현대판 우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통합측 총대들의 투표는 한편으로는 다시 이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되고 세상으로부터 싸운다는 비난 받는 것에 피로감이 들어서 수습안에 찬성투표한 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투표결과에 대하여 실망하고 있다. 총회가 이렇게 일개의 대형교회에 굴복하는가? 세습방지법이라는 교단의 헌법을 어기고 시행세칙이라는 편법을 만들어 헌법에 모순되는 결정한 것이 아니냐?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은 세속적 속물성에 젖어있으나 성직자들에 대해서는 보다 높은 윤리를 요구하고 실망하고 비난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목회자의 보다 높은 윤리와 정의감을 보여줄 수 없다면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지?

대통령이 각종 편법과 특권을 이용하여 공직자의 윤리를 어긴 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여 2달째  사회전체가 이 문제로 인하여 소란을 야기시켰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여야의 어느 편에 서는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의 정의와 법치를 구현하는 논리에 입각해야 한다. 대통령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35일동안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진동하고 국력을 소모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사회정의가 무너지는 문제에 대하여 “아니요” 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과 더불어 세상적으로 윤리적 신뢰를 부여 받고 있는가?  영국의 여왕 메리는 수천의 군대보다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존 낙스 목사의 설교를 두려워하였다. 낙스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뜻을 대행했기 때문이었다. 낙스에게는 이러한 그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이 배후에 있었다.

3. 하박국 선지자는 청빈한 삶으로
    자신의 삶에 자존감을 가졌다.

하박국 선지자의 자존감은 외면적인 풍요함에 있지 않았다. 그의 자존감은  하나님과의 내면적인 인격적 관계에 있었다. 그의 즐거움은 오로지 하나님이 있었고, 그의 기쁨은 오로지 구원의 하나님에게 있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18절). 하박국에게 하나님이 그의 힘이었다. 하나님은 하박국으로 하여금 도덕적 높은 삶으로 살게 하시는 원천이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도다“(19절).

여기에 하박국 선지자의 자존감이 있었다.

목회자의 자존감은 교권이나 교인 수나 교회당의 크기나 헌금 액수나 교회 예산이나 그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크기나 교계에서의 그의 지위나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의 자존감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자존감은 초대교회 성전 앞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영적 자존감이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영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는 <참 목자상>(1656)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641년 교구 키더민스터(Kiddermister)에 도착했을 때 그곳 주민은 신앙에 대해 무지했고, 생활이 타락했던 영적 폐허였다. 그는 그가 맡은 키더민스터 교구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심방과 전도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듯이 수많은 청중을 회심시키는 뜨거운 설교를 하였다.

그는 그 지역 전체가 변화될 정도로 놀라운 영향력을 끼치면서 회중의 규모를 크게 확대시켰다. 그가 왕정복고의 결과로 그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1661년에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회심하여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며 경건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사역을 통한 키더민스터 부흥은 영국 역사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진정한 부흥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백스터는 죽음을 앞둔 시기에 “나는 죽어도 복음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뿌린 씨앗이 자라서 세상에 유익이 되리라고 굳게 믿으면서, 교회 역시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의 사역은 바로 이러한 하박국의 자존감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유언은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4. 목회의 자존감은 목회자들
   자신의 삶이 만드는 것이다.

하박국은 이러한 자존감을 가졌고 그렇게 살았다. 목회자는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설교가 많은 청중을 모을 수는 있어도 존경을 받도록 하지는 않는다. 목회자는 그렇게 삶으로써 존경을 받는다. 그것은 청빈과 섬김의 삶이다.

리처드 백스터는 헌신과 사랑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철저한 회개와 건전한 신학 노선을 걸어가는 목회자를 향해 “개혁 목회자”(The Reformed Pastor)라고 불렀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외면적인 문제들 즉 성공 지향적이면서 권위주의적인 리더십, 세습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고 혼란한 우리 사회를 향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으며 사회지도자들과 일반 사람들을 지도해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 정치적 혼란은 지도자 부재의 문제다.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 부재는 이미 백 삼십년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 지도력의 결여에서 비롯되고 있다.

선교 130여 년이 되었고 많은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거쳐 나갔는데 우리사회를 이끌고 나갈만한 신뢰적인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목회자의 설교와 자존감에 입각한 바른 가르침과 모범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훌륭한 인성과 자존감을 가진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자라는 젊은 세대들은 위대한 인격과 자존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설교와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도 이러한 목회자의 가치관과 세계관 안에서 생활한다. 다시 한 번 한국사회의 미래 세대를 향하여 우리 목회자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그러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요청된다.

*이 내용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11월 8일 성락성결교회에서 가진 월례발표회에서 설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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