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숫자만 많아서 “크다”는 이름을 가진 목회자들은 혹시 내가 신자들을 예배당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고 있는 폭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아끼던 제자 둘(안드레와 또 한 사람은 요한복음 저자일 것)을 예수께 건네고, 목이 잘려 죽었다. 예수는 2천여 년 동안 아브라함 자손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로 세상에 왔으면서 겨우 12명 제자를 기르다가 십자가 죽음을 선택했다. 그 열둘도 다 못 가르쳤노라고 요한복음 16장 12절에 기록해 두고 떠났다.

신자 내 울타리(교회당) 안에 많이 가두어 둔 것 자랑이 아니다. 자고새가 타조 알을 품고 낑깽해 봐야 무얼 하는가? 목자가 되려면 이새의 막내아들 쯤 되거나 메소포타니아 목동의노래 들을 한 번 쯤 읽어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서양 사람들, 한국에 수만 명 이상 모이는 교회당이 많다고 하면 뭐라고 말하는 줄 아는가?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큰 교회당 찾아다니느라고 애쓰지 말고, 신자다운 신자 노릇을 위해서 노력해 보라.

그러나 신자 숫자 많은 교회가 문제 되기에 앞서서 수준 높은 신자가 먼저 급하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 한국 기독교 역사도 만만치 않다.

당태종 때 페르시아 마지막 황태자 경루도 보낼 때 네스트리우스파 유승 주교가 경루에 가서 몇 일 있었던 7세기 중후반, 징기스카의 원나라 쿠빌라이 시대 고려 충렬왕 이후에 상당수의 네스트리우스파 기독교가 고려에서 선교를 했고, 병자호란 홍와어지의 포로 중에 유력한 전도자들이 1637년 이후에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정조 때도 가톨릭보다 먼저 활동했고, 1884년 알렌의 본격 선교로 이어진다.

네스토리우스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 세력의 우리나라 활동을 인정하면 1천여 년이 넘는다. 한국교회 기적적인 부흥을 말하지만 더 깊은 눈으로 살피면 상당한 워가 있다. 한국교회여, 큰 인물 많이 내서 좌파나 공산당 세력을 당당하게 방어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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