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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 위, 기독교가 유대교와 이슬람 이끌어야”나의 신앙 나의 예수 >9< 십자가로 완성된 복음의 사람들이여!
조효근/본지 발행인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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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호] 승인 2020.01.02  16: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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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리” 창업, 드디어 제7년차 안식년의 출발입니다. 앞으로 6년이면 “희년”을 맞습니다. 희년이면 자유와 해방의 날입니다. 속죄의 완성이고, 이 땅 위에서도 하늘나라처럼 살 수 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유로운 생명체가 됩니다.

벌써부터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6, 7년은 눈물의 날들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가늠해 보는 이 아침입니다. 혹시 여러 독자님들, 여러분 중에 들소리를 초기서부터의 기억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어떠신가요.

저는 지금 아브라함과 야곱의 시대를 거쳐서 출애굽과 가나안 입국 과정의 여호수아의 활동을 눈 여겨 봅니다.

저는 지금 91년도부터 해외를 다녔는데 기회만 주어지면 유대 사막 아라비아 사막 사하라 인접 사막과 중앙아시아 사막들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특히 아라비아나 유대사막 주변에서는 내입에서 “하갈! 하갈이여”, 한 가문의 대를 이어주고도 상을 받기는커녕 자식과 함께 사막에 버려진 어머니여! 어디 계시나요. 나의 사랑스런 여인이여!를 부르고 다녔어요.

아브라함이 인류 재창조의 아담 역할을 했다면 하갈은 그의 두 번째 여인으로 가문이 문을 닫기 직전에 아들을 낳아 상속의 문을 열어주었으면서도 사랑해 주던 그 남편의 속임수 소풍놀이를 자식과 함께 나섰다가 사막의 길 잃은 어머니가 되었던 하갈의 이름을 불렀어요.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면서 그 어미를 찾아서 헤매던 나의 많은 사막 여행의 날들은 요즘도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갈이여, 나의 어미여 인류의 축복 한 가운데 있어야 할 여인이여.

한 번은 유대광야로 나갔었지요. 밤 되었는데 오히려 나는 브엘세바 깊은 쪽으로 더 갔어요. 낮에는 영상 20도의 날씨가 밤이 되니 영하 20도 끝으로 급변하고, 주변에서 전갈들이 뛰어나오는데 더 멀리서는 황야의 미친개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밤을 기억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요. 그러나 나는 광야에 나가면 그 바람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하갈의 울음소리를 듣곤 했어요. 하갈은 나처럼 아브라함을 부르더군요.

나는 어려서부터 아브라함의 꿈을 많이 그려 보았어요. 이사야처럼 말이죠. 아브라함은 어린 시절부터 혈혈단신, 그러나 그 간절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하나님의 이름도 미처 모르던 그가 저 높고 또 먼 곳에서 들려오는 지극히 영화로우신 주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죠. 대책이 없었으니 주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따라서 길을 나섰어요.

저와 “들소리” 역시 돌이켜 보면 철부지 할 때부터 그냥 그가 부르시는 음성에 “저요. 제가 여기 있나이다”로 화답하면서 맨 발에 빈 몸으로 달려들었죠.

 어찌 보면 스무살 미처 되지 못한 이른 나이에 큰 길에 나서서 나와 통행하시는 주 예수 의지하여 지금 여기 있는 데 그러나 혹시 그 누가 저와 “들소리”를 비웃는다면 저는 이런 답변 하겠어요.

“보시오. 인생 100년에 예수 그림 겨우 그리는 법이오! 비웃지 마시고 당신도 서둘러 보시오.”

그러나 그렇다고 저는 마냥 한가하지 않아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반성문이요, 세월 더 몇 년 쯤 남아 있을까 내 인생의 시간을 주께서 어여삐 보아주시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물론 독자의 회원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이 글을 시작한 첫 문장 앞줄에 가정 탈출을 고백했지요. 이 글을 본 내 가족이나 형제들은 왜 이런 글을 썼느냐고 타박을 해요.

그래요, 누가 추궁하지 않으니 제가 저 자신을 고발했어요. 처자식 내던져 놓고 길바닥으로 뛰쳐나와 초기 5년 정도 무자비할 정도로 고생했어요. 처자식 내던져버린 범죄, 자식을 그리워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내 한계, 더렵혀져 버린 목사, 더는 사용할 수 목사직, 목회를 할 수없이 되어버린 내 신세. 가난, 젊음을 깊이 짓밟아 버려야 하는 길고 긴 밤들….

언젠가 검사를 해보니 내 육신은 다 썩어버렸더군요. 심장은 뒤틀리고, 터지기 직전, 그리고 암, 그것을 수술하고, 몇 년 지나니 이석증, 요즘 사람들 기준으로 환갑 무렵의 내 육신, 겉으로는 아직 젊음이 남아있다 했으나 무덤과 더 가까운 내 육신.

넋두리 아닙니다. 저는 시댁의 버림받은 여인 하갈과 깊이 사귀고 그 아들 이스마엘, 또 저주 받은 인생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들도 되고 손주도 되는 모압과 암몬, 정통이고 적통인 아브라함의 손자 이삭의 장자인 에서가 사기꾼 같은 동생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겨버린 야곱의 친형 에서의 자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한을 풀어야 할 아라비아의 무함마드 자식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2017년 화해의 여행준비

한국에서 중국 서안과 우르무치를 경유하여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 요르단, 예루살렘까지 “문명여행”을 계획했었죠.

내가 문명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문명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한국에서 예루살렘 사이에 13개 나라를 경유하는 여행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오랫동안 준비했지요. 그러다가 2007년 한국의 단기선교여행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 명 억류되는 소식을 들은 그날부터는 본격 준비를 시작하여 2017년에 실행하려는 준비였어요.

그런데 막바지 단계 준비를 위해 2013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해서 주요 인물을 사귀기 위해서 여행 욕심을 냈지요. 그해 5월 저는 몇 명 일행과 중국 신강 위구르 지역 타클라마칸 여행을 하다가 귀국하여 한 주일 후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15일 동안 일정을 소화했어요. 15일 기간 12개 NGO팀을 만나는 강행군을 했지요.

귀국 후 급성 당뇨 충격으로 자리에 누웠고, 3개월, 또 6개월 후에는 회복되는가 했으나 몸은 한 단계 노쇠한 늙은이로 바뀌었어요.
 

이게 마지막인가? 나의 절규!

반드시, 반드시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그 사이 악질적인 인연이 되어 있는 이슬람과 가까이 사귀는 규범을 만들어내고 싶은 저의 열망은 더는 참을 수 없더군요. 하지만 이 일이 말처럼 쉽겠어요? 기존의 평가, 판단 등 역사과정에서 기독교가 정립해 온 가치를 존중하면서 함께 조심스럽게 열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2007년 이슬람 책(목사가 본 이슬람)을 한 권 썼지요. 그해 태국에서 한국선교사들 모임에서 발제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교회 이슬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선교단체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더군요.

이 사람들아! 좀 더 마음을 열어봐요. 이슬람을 얻으면 17억 명 선교효과가 있어요. 기독교는 반드시 이슬람이라는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돼. 요단강은 자신 있어도 이슬람 절벽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하늘 길 순탄치 않아요.

절규를 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더군요. 내 말 들어주지 않겠으면 목사가 이맘으로 개종하면 그때 쯤 귀를 기울이겠느냐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도는데 참았지요.
 

기독교의 완성은 이슬람 뛰어넘어야 해요

기독교의 벽이 있어요. 어렵지 않은데 다들 힘들어 하거든요. 마음을 열어요. 열면 열리는 마음, 예수는 자기 심장을 가르면서까지 내가 너를 믿는다, 또 사랑한다고 하시잖아요.

물론 압니다. AD 610년 무함마드의 메카선언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의 1400여 년의 비극적 앙숙관계를 압니다. 그러나 지난 역사들도 다시 눈여겨보면 서로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오해가 적대관계를 이루고, 전쟁과 투쟁의 연속과정에서 너를 없애버려야만 내가 산다는 식이었으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지요.
 

이슬람 사람들 참 친절해요

저는 비교적 터키 무슬림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이스라엘과 터키를 각각 20여 회 이상 다녔고, 중앙아시아와 타클라마칸 사막(중국 위구르 지역)은 그 이상을 다녔기에 그들 주 혈통이 몽골 초원지대의 투르크, 곧 돌궐족이기 때문에 한국인과 4촌 관계가 된다는 혈통적 이해도 있구요. 애초부터 저는 구약의 주인공 종족들과 친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훨씬 후 등장한 이슬람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친숙한 관계였어요.

구약성경을 깊이 읽어보세요. 구약의 혈통적 관계와 그것 때문에 울고 웃는 아브라함 자손과 야곱의 혈통관계, 또 북왕조와 남왕조,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관계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이스마엘 혈통과 그들의 신앙 깊숙한 데까지 접근하게 됩니다.
 

저는 사마리아 유민들 찾고 있어요

제가 중앙아시아지역을 30여 차례 이상 다니게 된 이유는 북왕조 사마리아 유민들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바벨론 디아스포라는 종종 만났어도 사마리아 유민들은 쉽게 만나지 못해요. 인도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만난 일이 있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에서 만났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접경지역에서 그들의 역사와 뿌리를 일부 찾아보기도 했어요.

타지키스탄, 파미르족들 중에서 몇 가정 만났는데 그들은 지금도 한사코 신분을 감춥니다. 사마리아 유민들은 유대인을 겁내고,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AD 431년 에베소공의회 이단정죄 받은 사람들)들은 정통파 기독교를 싫어합니다. 이슬람, 그들 무슬림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인정만 해주면 결코 악의를 품지 않아요. 이슬람 지역에서 사고사를 당하는 경우나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80% 정도는 그들과 적대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고 희생일 것입니다. 선입견으로 이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해요.

특히 한국교회 사람들은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아랍계 사람들, 특히 이슬람 종교 사람들 쉽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10여 년 쯤 뒤에는 제법 규모가 큰 모스크가 지상으로 돌출되어 나올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교회는 허세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작아져보이도록 지금은 숫자나 세력을 줄여서 말합니다. 실제로 국내 이슬람 신자는 50만 명 넘었을 겁니다. 그들 중동 경제와 무역관계로 형성된 우호 인력 또한 20만 명은 되겠지요.

앞으로 한국교회가 이슬람 공부 전문적으로 하지 않다가는 100년 쯤 후에는 한국교회와 한국 이슬람 세력이 대역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끔찍한 비극이지요.

왜냐하면 양 종파는 DNA가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러나 전투력은 이슬람이 한국교회보다 7배는 더 됩니다.

한국교회가 생존하려면 살아서 요단강을 건너는 복음 신앙(요 11:25~27)에 기존한 “부활”을 다시 공부해야 하고, 반드시 부활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 없는 신앙은 한낱 이데올로기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루살렘 식 종교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 성전을 헐어라~”(요 2:19) 하시는 예수의 가르침을 스데반처럼 받아들여야지 그를 죽여버린 사울 방식으로는 예수의 가는 길 따라잡지 못합니다.

정확한 답변으로는 이미 이 신앙은 죽은 것이지요. 송장이고 무덤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이기에 말을 말로 알아듣지 못하니 어찌합니까. 다시 태어나는 길 밖에는….

저는 새해에는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간의 상호관계의 세미나 또는 심포지움을 “들소리” 이름으로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왜 내가 처자식을 버리면서까지 내 존재에 대해서 저항하고, “내가 기독교만을 사랑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죽음 같은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를 남아있는 날들로 승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귀한 독자님들의 성원과 박수에 더 힘껏 보답하려고 합니다. 새해부터는 내 인생의 길 8부 능선인데 정상을 바라보는 기쁨으로 날마다 마지막 한 걸음일 수 있는 날들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 들소리, “들소리”가 “우리들 소리”입니다. 그런 날이 더 빨리 왔으면 합니다. 서로가 나누어 가질 짐, “우리 들소리”로 화답하게 해주세요.

2020.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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