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 나의 예수 >10< 나라 사랑, 예수 사랑

한국교회에는 잠재된
보배(복음)의 역사(예수)가 있다.
신자들이여, 목사님들이여
우리는 알죠,
주 예수의 오늘을 지켜내야 해요. 

 

인간존엄을 대한민국에게 선물하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길로 대한민국을 이끌겠다는 현 정권이 지난 2년 반 정도의 해 온 권력운용 방식을 보니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나는 이 권력이 탄생할 때부터 그들이 숨기고 있는 본색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부끄럽다. “예수 재림 전야”를 준비하기 위하여 처자식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던 나의 구도(求道)의 길 40년에 이런 치욕을 감수해야 하다니.

나는 2017년 이후는 거의 일손을 놓았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버린 교권자들도 얄밉고, 결과적으로 무능한 것으로 중간결산을 해야 하는 “들소리운동” 또한 부끄럽기만 했다.

사실 들소리 회원과 독자, 그리고 한국교회와의 작별인사를 쓰려고 시작한 <나의 신앙 나의 예수>를 잠시 주춤거리게 하고, 이것이 반전의 물줄기가 될 수 있다는 엘리야의 구름 조각(왕상 18:44), 사람의 손바닥만큼 한 것을 보았듯이 나도 2019년 10월 3일 “광화문 광장 눈동자들” 2백여만 개를 보았다.

깜짝 놀랍다. 결코, 그 어떤 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1960년 4월 19일 날도 나는 광화문광장에 있었다. 경무대 앞까지 진출했던 그날, 고등학교 3학년 신분이었으나 친구들로부터 ‘미래의 정치부 기자’로 통했던 나는 4.19 전후의 민심을 읽었다. 그날 광화문광장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로 가는 시위자들의 부상 또는 사망자도 있을 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쥐어뜯었던 날로부터 60년이 다된 2019년 10월 3일 광화문 광장은 인간존엄을 향한 갈망을 호소하는 착한 사람들의 눈동자들이었다.

지난 2019.10.3 이후 나는 그래 3년 또는 4년은 일단 버릴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해 보았다. 일단은 지금 절망하지 말고 3년은 더 버티면서, 내가 주 예수께 늘 소원했던 ‘준마는 마구간에서 죽지 않는다’는 기도를 다시 다짐해 본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기는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길은 예수처럼, 예수와 함께,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다.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못해서 나라가 이 꼴이다. 꼭 지금 정권의 책임이라고 볼 수만 없다.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마구잡이로 들었다 놨다를 하겠는가.

신자들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한가부터 알아야 한다. 기독교 역사에 대해 서투른 사람들은 한국 천주교회가 1775년, 기독교(신교)가 1885년 선교가 시작되었고 양 측 모두 우리가 자원하여 한국 땅에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건 모르는 말이다. 한국은 삼국시대인 때 기독교가 신라에 먼저 출입했다.

기독교 대한조선의 땅에 왔을 때 기독교는 AD431년 에베소 에큐메니칼 공의회 때,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알렉산드리아 키릴 주교와 정치싸움을 하다가 이단 정죄 추방을 당한 이후, 그의 제자들이 칼케돈 공의회가 열리던 해, 또 그들의 스승인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복권 직전 사망하자, 에뎃사(현, 터키의 산 우르파)에 집결하였고 니스비시 크데시폰 등 사산조 페르시아와 인도 중앙아시아는 물론 페르시아 출신 알로펜 주교가 당 태종 9년(AD 635년)에 당나라에 들어왔다.

당나라가 망한 AD 904년 거란이 당나라 세력을 이어받았고, 이후 거란을 말갈(여진)족이 이어 받아 금나라, 다시 칭기즈칸이 이어받는 과정에서 중국 대륙은 물론 신라, 발해, 몽골, 중앙아시아 일대에 기독교가 강세를 이루었고, AD 1174년 경 십자군 제2차전 직전 “사제 왕 요한” 이야기는 서양 중심의 세계 기독교 역사에 유명한 사건이었다. 바로 그 기독교가 신라에 오기 시작했다.

그럼 신라 기독교는 언제 누구에 의해 소개되었나? 알로펜 주교가 당 태종의 권유에 의해 사산조 페르시아 최후의 황태자를 신라의 서라벌로 보낼 때, 알로펜 감독의 제자인 유승이 서라벌에 가서 몇 년 동안 머물 때 원효대사는 물론 원효의 스승인 대안대사와도 깊이 사귄 일화 근거가 필자에게는 있다.

원효의 때이면 1천4백여 년 전에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고, 더 가까이는 고려 충렬 왕이 쿠빌라이 원세조의 사위가 된 이후 고려에는 AD 1280년경부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들어왔다.

좀 더 양보하면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 자료가 중국 장안(자국의 서안)에서 땅 속에 묻은 지 8백여 년 만에 발굴된 AD 1625년 중국은 명나라가 무너지고,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운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다. 누루하치의 정묘호란 1616년, 누루하치 아들 홍타이지가 AD 1636년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삼전도 들판에 무릎 꿇리던 그 무렵 청나라 상인이나 장수들 중에는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 사람들이 조선과 청나라를 오고가면서 활동했다.

어찌 이 뿐인가. 정조대왕 때 천주교 박해가 있었는데 그때 천주교 주교와 네스토리우스파 주교가 뒤바뀌었다는 역사 문서도 있다.
 

왜, 역사를 꺼내는가?

대한민국 교회는 130년 역사의 기독교가 아니다. 1천년도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동북아시아 심장부인 대한 조선의 땅에 기독교의 터를 잡으셨다.

중국은 공, 노, 맹, 장을 떠들면서 아는 것이 많아서 옥토가 되기 힘들었고, 몽골은 초원의 이동 족이라 조금은 지식이 부족했고, 1천여 년 전 일본은 한국의 눈치나 보는 그저 후하게 대접해도 이전 양반 수준의 지식에 머물렀다.

가장 좋은 환경은 대한 조선이다. 태고 적부터 신앙심이 발달했고, 미신이라지만 단군 주변을 보면 유일신 신앙 냄새도 많이 나는 “대한 조선, 크고도 오래된 조선”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로 흐르면 안 된다

사회주의, 종국식이나 특히 북한식은 더더욱 안 된다. “인간”, “인권”의 존엄이 부족하다. 물론 지옥에 가더라도 그곳을 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독교 힘으로는 응큼한 중국이나 고약한 북한을 겁을 내지는 않으나 지금의 대한민국 교회는 한 눈 팔거나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대한민국으로 북한의 노예생활을 하는 이들을 구원해야 하고, 8백만 이상의 귀신을 섬기는 일본, 사단의 본색인 중국을 구원하고,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아시아의 구원을 위해서 한국교회의 선교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아껴야 한다.

선교 역량을 강화하고, 특히 목회자들의 실력을 강화해야 하다 임마누엘 예수가 최소한 목사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 목사들은 돈에 주눅 들고, 신자와 장로들에게 주눅이 들어 아무런 일도 못하고 걱정만 태산이다.

보시오. 아브라함은 떠돌이(히브리)였으나 살고 죽는 문제 겁을 내지 않았어요. 백 살이 되도록 눈 먼 딸자식 하나 없었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당당하게 살았지요.

백 살에 얻은 자식 이삭을 바치라, 하신 하나님께 주신 이가 가져가신다는 데, 하면서 모리아에 내던지던 아브라함의 기상을 보시오. 모세나 여호수아, 그들도 어려운 환경을 이겨냈소.

바벨론 포로기까지 남북조 이스라엘 왕조의 이스라엘 디아스포라들도 빈  손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쫓겨났으나 그들은 어디를 가도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였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에서 빗나가고, 종교의 행위가 제한되고 또 차단될 수 있음을 예감해야 한다. 해방과 6·25전후 북한 신자들은 남쪽으로 내려와서 살아왔지만 앞으로, 자칫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천 길 낭떠러지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으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어질병이 지랄병 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해방기 이후 지금이 가장 운세가 좋지 않다. 이미 좌파는 41% 부동의 세력을 확보하고, 자유와 평등을 준다고 유혹하고 있으며 마치 19세기 철학자 황제처럼, 가장 달콤하고 정의로운 말만을 골라서 귀 얇은 백성을 유혹하고, 조선왕조 말기의 “양반 족보” 나눠주듯이 해대는데 마음 약한 사람은 대책이 없다.
 

복음 능력 서둘러야 한다

때가 되면 편히 가르치고, 익히기 어려운 때가 올 수 있다. 바벨론 포로기 유대인들 갑자기 예루살렘 멀리 쫓겨나니까 안식일 예배처가 없다.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말씀(성경)이 있었다. 그것을 주머니에 담을 만큼 작게 만들었다. 계명을 주머니에 넣으니까 마치 예루살렘 지성소에 들어간 것처럼 마음에 위안과 평안이 몰려왔다. 아하, 하나님이 내 주머니 속에까지 오실 수 있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처럼 몸 안에, 내 영혼 안에 주 하나님을 모시지는 못해도 자기 보따리나 주머니 안에까지 모실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그 믿음으로 바벨론 포로기를 이겨내며 5백여 년 디아스포라시대를 견디면서 메시아 예수를 온 인류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 주었다.

우리는 최선의 경우 또 최악의 경우까지 감안하여 난관을 헤쳐 나갈 카타콤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중얼거리면서(글을 쓰면서) 더 좋은 지혜와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이 지키신다

남 왕조 유다와 예루살렘 귀인들인 (BC 604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까지 바벨론으로 1차로 끌려가고, BC 597년 에스겔이 2차 포로기에 끌려가서 바벨론에서 예언을 시작한다. 에스겔서 10장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이 떠나시는 광경이 그려졌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왕의 개혁기인 BC 628년 보다 1년 전인 BC 627년부터 요시야 왕과 마치 양 날개처럼 예언을 활발히 했다. 그러나 요시야가 전사하는 BC 609년 이후, 특히 여호야긴 왕에게 많은 시련을 겪었다.

예레미야시대 당시 예루살렘에는 5백여 명의 선지자들이 있었다는데 어느 한 사람도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망한다.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된다고 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는 선지자들 어느 하나도 예레미야의 예언에 동참(지지)하지 않았다.

감히 예루살렘을 누가 짓밟는다고, 다윗의 집이요 하나님의 성전인데 어느 누가 무너뜨릴 수 있느냐고 거짓을 예언했었다. 설마하고 우리가 겪는 이 고비를 쉽게 생각하지 말자. 교회는 다시 힘을 내서 이 정부가 하겠다는 복지부분을 교회의 실력으로 나누어 감당해 보자.

더구나 시대가 급변하고 있기에 교회의 활동에도 빈틈이 생길 수가 있다. 자칫하면 게을러지고, 또 아차하면 인터넷 자료가 지식이 되어 인간을 우맹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또한 시기가 참 좋지 않다. 하나님의 자식들이 ‘운명’을 말하기에는 적절치 않으나 시기가 좋지 않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선포할 내용들을 권력이 마구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모욕감을 느끼고 무식하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하면서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

북한에서는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 말 백성들이 많이 굶주리다가 이성계가 왕이 되어 쌀밥을 많이 먹게 하니까 쌀밥이 이성계의 성을 따라서 “이밥”이 되었다더라.

무슨 일이 있어도 편 가르기 정치하는 이들 입에서는 “축복”이나 전체 국민을 고루 행복하게 해주는 기능이 그들에게는 없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잠재된 보배(복음)의 역사(예수)가 있다. 신자들이여, 목사님들이여 우리는 알죠, 주 예수의 오늘을 지켜내야 해요. 

틈 새만 열려도 간다. 북한의 심장부에 복음을 다시 심으면 좋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문이 열리면 잘 훈련된 복음의 사도들이 북한에 복음을 다시 심겠다는 자부심을 기릅시다. 신자마다가슴에 모신 하나님을 북한 형제 자매들에게 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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