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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을 맞는 해의 한 가지 소박한 바람
유승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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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호] 승인 2020.02.05  1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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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승 준 작가

1935년 충남 논산에 설립된 병촌교회는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교역자와 신도 대표들이 구속되었고, 교단이 해산될 때 예배당도 폐쇄당해 매각되었다. 이후 가정교회 형태로 유지되던 교회는 해방과 함께 재건되었다.

이곳에서 6·25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자들이 양산되었다. 강경을 통해 논산까지 점령한 공산군은 우익인사들을 대거 체포해 고문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공산군은 우익인사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뒤 도주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이틀에 걸쳐 처참하게 학살된 인원은 120명이었으며, 이 중 16세대 66명이 병촌교회 교인들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교인들은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1956년 순교자 기념 예배당을 신축했으며, 뜨락에 순교자 기념비를 세웠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있는 진리교회는 1932년 문준경 전도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때 이판일, 이판성 형제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들 형제는 임자진리교회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었으며, 신사참배를 거부해 투옥되었을 만큼 믿음이 좋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임자도에 들어온 공산군은 교회를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징발했다. 교인들이 이판일 장로 집에 모여 계속 예배를 드리자 공산군은 이판일 장로를 목포 정치보위부에 구금했다. 우여곡절 끝에 풀려난 그는 섬으로 다시 돌아와 교인들과 함께 밀실 예배를 드리다가 공산군들에게 발각되었다. 그날 밤 붙잡힌 교인들은 배교를 거부한 채 당당하게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잔인하게 살해된 사람들 가운데 13명이 이판일 장로 형제의 노모와 어린 딸 등 가족이었다.

1950년 9월과 10월 내내 전남 영광군 염산면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이어졌다. 9월 말에는 야월교회 김성종 영수를 비롯한 65명의 교인이 빨치산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10월에는 이웃 염산교회 교인 77명이 설도포구 바다에 수장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밖에 백수교회, 묘량교회, 법성교회, 영광읍교회 등에서 모두 197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외에도 1950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상월교회 35명을 비롯해 영암읍교회 23명, 구림리교회 19명 등 전남 영암 지역에서 학살된 교인들의 수는 88명에 이르며, 전북 정읍에 있는 두암교회에서 학살당한 교인들도 23명에 달한다.  

우리 민족 최대의 아픔이자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꼭 70주년이 된다. 그때의 비극을 결코 잊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오롯이 되새기며, 분단을 제대로 극복해 우리 민족이 다시금 통일과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의를 다지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 역시 분열과 대립을 멈추고 순교자들을 기리면서 순교신앙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6·25전쟁 당시 집단 학살된 교인들의 행적을 정확히 헤아려 순교자와 수난자 혹은 희생자를 분명히 정리하는 역사적 작업도 병행해야 하리라고 본다. 엄밀한 의미에서 순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증언하다가 당한 육체적 죽음, 이러한 증언 행위에 대한 적대 세력의 증오와 박해의 결과로 인한 죽음, 배교나 타협을 하면 얼마든지 죽음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죽음’을 의미하며, 이 세 가지 순교의 조건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순직자나 피랍자 혹은 수난자나 희생자로 구분하면 된다.

그런데 6·25전쟁 때 집단 순교했다고 알려진 희생자들 중 상당수는 순교자로 보기 어려운 영유아나 주일학생 그리고 세례 받지 않은 초신자들이었다. 여러 교단에서 자기 교단의 순교자 수를 늘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순교자를 양산한 탓에 한국 개신교 순교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행적이 검증된 인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교단 역사편찬위원회와 신학대학 역사 전공 교수들이 힘을 모아 객관적 기준으로 역사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순교신앙을 회복하는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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