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과 이란제국의 쇠망 통해 이슬람 등장 제대로 이해하도록 살펴/폭력적인 문명 충돌, 해결책은 “관용적 종교 문화와 다원적 사회” 제시

서양 중세와 이슬람을
대비시켜 문명 비교를 시도한
책이 척박한 가운데,
‘오늘의 기독교-이슬람-
유대교’ 탐구할 수 있는 책

 

▲ <신의 용광로>디이비드 리버이링 루이스 지음/
이종인 옮김/책과함께

로마가 쓰러지자 이슬람이 일어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저자는 이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로마가 멸망한 후 이슬람이 아라비아에서 흉기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유럽과 기독교가 어떻게 알-안달루스의 무슬림들과 갈등하면서 발전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랍인들은 역사상 권력, 종교, 문화, 국부에 있어서 최대의 혁명을 완수했다. 바로 이런 혁명이 있었기에 유럽은 비로소 유럽답게 되었다.”

저자의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로마 제국의 쇠망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다양한 사후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이란을 상대로 벌인 불운한 모험 때문에 로마 제국이 붕괴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레코-라틴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이란 제국은 군사 확장 정책, 법률, 문화적 성취, 도로 건설, 화려한 건축물 등에서 거울 이미지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이 두 제국이 판도 확장을 거듭해 나가면서 서로 충돌하게 되는 부분은 물질과 반물질의 폭발적 인터페이스를 연상시킨다.”

저자는 이 두 강대국의 필연적 쇠망을 살펴보지 않으면 이슬람 세력의 등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로마와 이란 사이에 산발적으로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정상적인 국정 상태라기보다는 우연한 현상이었을 뿐 이 두 제국은 필요에 의해 거래를 하기도 했음을 말한다.

“이란은 아시아로 가는 길들을 봉쇄하고 있었고, 로마는 지중해의 맹주로서 해로를 장악했다. 로마와 이란의 상류계급들은 각자 영토의 소유권을 확장하느라고 바빠서 기독교 메시아의 탄생(150년 후의 일) 전가지 서로를 의식하지 못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1885년 이후 근 10년 동안 세계에서 최고로 막강한 대영제국의 동아프리카 진출을 가로막는 세력이었다고 한다. 1982년 수단에 한 달 가까이 머물면서 그런 부분을 공부했었는데, 그 후 4년이 지나서 세속주의를 지향하던 수단 공화국은 사라지고,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이 집권했다. 1983년, 곤경에 빠진 수단 정부는 1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을 무시하고 전 국민에게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강요함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수단 북부에는 무슬림이, 남부에는 애니미즘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기독교도들이 살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저자가 하르툼에서 목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의 힘과 호소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하지만 미국은 20세기의 최고 제국인 미국은 그러한 사실들을 성찰하지 못하고 이슬람과 충돌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1990년대에 중동과 동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상징과 도구를 향해 지속적으로 퍼부어진 테러는 그런 값비싼 충돌과 대결의 논리를 분명하게 예시했다”고. 역사가가 현재를 생각한다는 것은 곧 과거의 관점에서 현재를 살펴본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이슬람이 유럽에서 무려 700년 동안 뿌리내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먼 과거의 얘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유럽)과 무슬림 세계의 관계는 1,300년 전 고도로 발달한 이슬람 세계와 빈한한 기독교 세계의 관계를 역전시켜놓은 것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새로운 의미를 띤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라비아 오지에서 후발주자로 생겨난 이슬람이 어떻게 월드 파워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말하면서, 이슬람에 대해 관용을 보이지 않는 서방의 태도는 샤를마뉴 치하의 카롤링거 왕조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 용어인 ‘용광로’는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을 상징하는 용어로 보인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슬람 문명이 그 발상지인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용광로의 기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유럽 땅인 안달루시아에 진출하여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 신자들을 융합하면서 선진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여러 종교의 신자들이 갈등과 시련을 이겨내고 ‘라 메스퀴타’(코르도바의 대모스크 사원)로 대표되는 관용적 종교 문화와 다원적 사회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 세기에서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명 충돌에 대해 평화적인 용광로의 해결을 ‘라 메스퀴타’ 같은 데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서양 중세와 이슬람을 대비시켜 문명 비교를 시도한 책이 척박한 가운데, ‘오늘의 기독교-이슬람-유대교’를 탐구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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