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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온라인 예배보다는 ‘Off-Line 가정예배’ 권장함이 어떨까?
김진구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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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호] 승인 2020.03.25  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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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만 지나가면
모든 것이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이번 사태보다 더한 사태는
계속해서 몰려 올 것이다.
이제 정말로
교인 하나 하나를 제대로 세워나가는
그런 목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가?
정말 코로나 때문인가?

 

   
▲ 김진구 목사 /
신동감리교회 담임

필자는 이 시대에 로컬처치들이 예배당 폐쇄를 결정한 가운데 주일날 예배당에 함께 모일 수 없는 몇몇의 지인들과 통화를 하며 그들의 답답함에 대해서도 경청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것이 예배인가?” 이런 생각에 정말로 오프라인으로 성도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던 그 시간이 너무도 그립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 가족끼리 진지하게 예배 준비해서

필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권면을 했다.

“주일 오전 11시 혹은 교회에서 정한 공예배 시간이 되면 온라인 시청을 하지 말고 가족들끼리 보다 진지하게 예배를 준비해서 드리는 것은 어때요? 그 가정의 아빠, 혹은 남편이나 엄마가 기도 하면서 그 거룩한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부를 찬송을 준비하고, 함께 읽을 말씀도 준비하고…. 예배 시간에는 가족들 중에 한 명에게 예배를 위한 대표기도도 시키고, 성경을 함께 읽은 후에는 주님이 주신 말씀을 함께 나누고, 또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하고, 아빠나 엄마가 자녀들을 축복하며 기도해 주고, 헌금도 하고, 그리고 서로 간증도 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 시대에 어떻게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하고 싶은 권면의 말도 해 주고…. 그러면 더 충만해지지 않을까요?”

소속된 로컬 처치의 소식이나 담임목사님의 메시지가 궁금할 수도 있으니 교회에서 송출한 온라인 예배 자료나, 담임목사님의 메시지는 녹화해 두었다가 예배 후에 시청을 하고, 또 교회 소식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계속 반복해서 강조해 왔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그리고 2~300명 이상이 밀집해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중형교회들이나 군부대 지역의 특수 교회들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예배당 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 이번의 선택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아무리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온라인 예배를 예배로 인정하는데 있어서는 아직도 선뜻 동의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담임목사님과 교회 임직원들이 예배를 드리는 광경을 보면서 은혜를 받을 수는 있다. 나도 그것은 인정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방송매체를 비롯한 온라인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교우들이 만족해 할 만큼 풍성하게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역시 믿고 있고 또 경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 제대로 예배 드린다는 의미

그러나 예배는 다르다.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야 그 예배가 제대로 드려진 것이다. 우리들은 오늘 날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가 ‘가인의 예배’는 아닌지 다시 또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인도 예배를 드리기는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예배를 받지 않았는데, 그 예배를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일 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를 찾아 나섰던 그 열심과 헌신이 사라진 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문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하던 이들이 잘 되었다 싶어서 온라인 예배를 시청하며 편안하게 침대에 엎드려서, 혹은 식탁에 둘러 앉아 커피나 마시면서 담임목사님 혹은 교회 중직들 몇 명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 퍼포먼스를 시청하는 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시국에 모두 예배당에 반드시 다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대로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다. 예배를 시청하는 것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예배를 시청하면서도 공예배를 드릴 때 못지않게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 순서에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를 제대로 하고, 찬송도 제대로 하고, 헌금도 진심으로 드린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 말은 아니니 본인이 그렇게 드리고 있다고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니 불쾌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예배=헌금”의 도식으로 교회를 몰아가는 이들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이고, 그들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교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런 프레임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그러면 안 된다. 설령 그런 교회가 일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모든 교회가 그런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침소봉대이며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헌금하는 이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만일 위와 같은 논리라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모든 교회들 역시 온라인으로 헌금 걷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헌금은 주님에게 드리는 것이지 교회 유지비로 내는 세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참된 크리스천들은 아주 무식한 목회자나 거짓말로 성도들을 혼란케 하는 사악한 무리들이 많으니 정말로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 흩어지는 교회 찬성, 교회 유지 어떻게 하냐고?

“흩어지는 교회” 찬성한다. 교회는 마땅히 성도들을 잘 훈련시켜서 세상으로 날마다 파송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를 허물고 분열시키자는 말은 아니다. 요즈음 시국에 흩어지는 교회를 강조하는 이들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흩어지는 교회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충만한 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선교적 차원의 언어이다. 그리고 교인들을 훈련시켜 이웃교회로 파송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꾸역꾸역 자기들 교인숫자만 늘려나갔던 교회들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도시의 대형교회들부터 이번 기회에 온라인 예배니 어쩌고저쩌고 하지 말고 솔선수범하여 교인들을 모두 흩어버리기를 바란다. 교인들을 자기 교회에 묶어 두고 관리하기 위해서 온라인 예배라는 꼼수를 부리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냥 잘 훈련시킨 교인들부터 내 보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권면을 하고, 이번 사태가 끝나면 보다 적극적으로 주변의 작은 교회들로 과감히 파송해 주어라. 3000명의 교회가 300명의 교회가 되면 예배당 공간이 널찍해서 방역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300명의 교회가 30명이 되면  역시 예배당 공간이 널찍해서 훨씬 더 방역이 잘 될 것이다.

교회 유지는 어떻게 하냐고? 믿음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아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가운데 유지될 수 없는 교회라면 폐지되는 것이 낫다. 그것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목사 혹은 교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일부 무리들의 이기적인 컨그리게이션(Congregation, 집회 장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만 지나가면 모든 것이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이번 사태보다 더한 사태는 계속해서 몰려 올 것이다. 이제 정말로 교인 하나 하나를 제대로 세워 나가는 그런 목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가? 정말 코로나 때문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가 본질을 버리고 쓸데없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기 때문이다.
 

+ 본질에 충실한 설교, 절실하다

최소한 주일 날 설교만이라도 목사들의 설교가 본질에 충실했으면 한다. 수요예배나 새벽예배에 나오는 성도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훈련이 된 성도들이다. 그들은 복음이 무엇인지도 알고, 십자가의 삶이 무엇인지도 알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도 있는 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목회자들이 작금의 시대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주님의 지혜와 명철로 더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성도들의 윤리적인 문제와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최소한 주일 날 만은 목회자들의 설교가 더욱 본질에 충실한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십자가의 도(道)라든지, 복음의 비밀, 십자가의 삶, 하나님 나라의 비전…. 이런 것은 없고 목사들이 자신들의 지식이나 경험을 자랑하고, 성경을 사사로이 풀어 주는 어리석은 율법학자나 서기관 수준에 머문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배운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세상적인 지식을 적당히 버무려서 말도 안 되는 소리나 지껄이며 도덕적인 설교나 윤리적인 설교, 그리고 세상의 비평가인 양 자기와 다른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이런 수준의 설교만 한다면 그런 교회들은 계속해서 소망이 없을 것이다.

주님의 신실한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목사의 현란한 지식에 갈급해서가 아니다. 주님이 참으로 사랑하는 주님의 진실한 교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갈급해 있다. 목사들은 설교를 할 때 나의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되고 있는 지를 날마다 기도하며 정직하게 그리고 뼈저리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자신의 설교에 매료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는 성도들이 되도록 훈련하고 가르치는 일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는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설교들이 너무나 많다. 오히려 그것이 성도들을 더욱 혼란하게 한다. 왜냐하면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설교는 어떤 상황, 어떤 사람의 처지에는 맞을 수 있어도 그와 정반대에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맞지 않는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에 충실한 설교는 누구에게나 맞다. 단지 본질에 충실한 설교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거나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일 뿐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 시대의 교인들이  이런 목회자들의 설교에 미혹되기 보다는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말씀을 대면하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주님은 ‘말씀하시는 말씀’(the speaking Lord)이시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채 단순히 목사들의 허접한 설교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이번처럼 전혀 예기치 않은 위기가 왔을 때 그것을 뚫고 나갈 힘과 지혜와 능력이 없다.

목사들도 과감해야 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세상의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일어필자는 일이 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이미 우리 주님께서 친히 ‘예고하신 말씀’(눅  21:11)이 성취된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한 일도 있을 것이다. 더욱 더 담대하게 앞으로 있을 모든 사태에 대해서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행정명령이 떨어지고, 공권력에 의한 물리적 충돌이 있고, 예배당 문을 강제 폐쇄하는 일이 있어도 요란을 떨 필요도 없다.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예배당 문이 닫히면 우리들은 예배당 마당에서 예배를 드려도 되고 그것도 안 되면 들로 산으로 나가서 예배를 드리면 된다. 그것도 어려우면 홀로 깊은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과 독대하며 주님의 뜻을 물어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연약한 성도들이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예배드릴 수 없는 성도들을 방치하면 그것은 목회자나 기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누군가 손을 잡아줘야 하고, 누군가 격려해줘야 하며, 위로하고 힘을 주며 지도해 줘야 할 그런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우리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도 이들에게 혹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지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필자는 정부시책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사안별로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하나님의 말씀이나 우리들 신앙의 양심에 반하는 권고, 혹은 사악한 의도가 있는 명령에는 절대로 동조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필자는 우리 교회 성도들도 이런 식으로 훈련시켜 나가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눈치를 보며 우리가 해야 할 본분을 망각하거나 소홀이 해서도 안 된다.

세상은 세상대로 굴러가면 된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는 알 사람은 다 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라고 해도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노아시대처럼 모두가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을 해도 주님과 동행한 길이라면 그것이 생명의 길이며 십자가의 삶이다.

우리들은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맞지만 세상에 속한 교회는 아니다. 우리들의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우리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뿐이다. 우리들은 이 시대에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의인인체 날 뛰고 있다. 더욱 분별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실제로 존경받을만한 행동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주님의 말씀과 다른 말이라면 그는 거짓 선지자이다.

이번의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면 영적인 성도들은 더 높이 비상할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당분간은 점점 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도 벌써 믿음훈련이 안 된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하고 있다. 빈자리도 많다. 헌금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필자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우리를 더욱 선하게 이끌어 가시는 우리들의 좋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이번에 제대로 다이어트를 하고, 더 높이 날 수 있는 민첩함을 제대로 회복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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