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 파라, 깊이 파라하면서 화순 화학산을 지켰던 해방기의 이세종 선생은 초보지식에도 못 미칠 지식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살펴서 자신의 뜻한 바 영적단계에 이르렀었다.

코로나 시즌에 집단모임을 경계하고, 거리두기를 독려하는지라 답답하다. 말을 해야 지혜의 길을 찾는 법인데 멀쩡한 입을 마스크로 가리고 4개월째 살아가노라니 영 재미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분쟁하고, 싸우고, 원수맺기를 좋아하니까 말 좀 아끼면서 살아달라고 부탁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 사회변화의 때가 오면 허둥대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은밀한 곳으로 나아가 엎드려 기도한다. 기도와 경건은 일정한 수준의 반복과 훈련이 필요하다. 다이어트나 건강관리도 쉽지 않기는 하지만 기도와 경건의 침잠을 통하여 내면세계로 몰입해 들어가서 영성을 쌓아가기는 어느 것, 어떤 것들과 감히 비교하기 어렵다.

영성 깊은 수도자나 고승들 일화를 보아도 알 수 있거니와 고행에 가까운 몰두가 필요하다. 우리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는 “기도회”에는 익숙하지만 “수도(修道)”에는 낯설고 서툴다. 겨우 40일 기도에 만족하는 수준이지만 400일이 기본이고 3년 정도가 되어야 기초가 잡히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교회에서도 잊히고 묻히듯 침묵 속에서 자기를 비워보는 깊은 훈련과 기도를 이루어내는 인물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용시대, 초기 자본주의가 형성될 때 태어난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생리는 장고(長考)의 훈련에 서툴다. 개구리의 겨울잠 정도의 침묵도 아까워서 허둥대듯이 세월과 숨바꼭질만 하고 있으니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노릇으로 끝나는 장부들이 대체로 많다.

죽은 듯이, 토굴 속으로 파고들어 자기 한평생을 되돌아보는, 또 그것으로 죽음 훈련도 미리 해보는 깊은 기도가 오늘은 필요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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