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일천번제 드려야 복 받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 논리는 결코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오세준 목사

필자가 근래에 강남의 어느 중형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교회 주보를 살펴보다가 주보에 일천번제 헌금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속으로 적지 않게 당황을 했다. 왜냐면 그 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의 지적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건강한 교회로 소문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천번제를 어떻게 이해하기에 이런 헌금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과연 건강한 교회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아직도 한국교회에 일천번제를 하는 교회가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몇 교회를 알아본바 일천번제 헌금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일천번제 프로그램이 왜 비성경적이고 비복음적인 것인지 기독교 언론이나 목회자 세미나 등에서 비판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꽤있었다. 때문에 이를 시정한 교회도 많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천번제를 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

알다시피 일천번제의 ‘번’은 횟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태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천일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횟수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일천번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회는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모델로 한다. 솔로몬이 천 마리의 희생제물을 번제로 드린 것인데 이를 일천 횟수로 해석을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솔로몬이 뭐라고 말할까?

일천번제의 의미를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행하는 목회자들마다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겠지만 이것은 명백히 기복주의 산물이다. 일천번제 프로그램을 하는 교회는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기 때문에 큰 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솔로몬처럼 복을 받으려면 일천번제를 드려야 한다는 논리로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든다.

일천번제는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모델로 하기 때문에 성경적이라고 교인들이 믿을 수 있다. 그래서 천일 동안 기도회에 참석을 하고 작정한 대로 매일 천일 동안 헌금을 하며 기염을 토하는 교인들이 생긴다. 이렇게 지성을 드리면 하나님이 감동을 받아 복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로 인해 교회 헌금이 늘고 교인들이 열심을 내게 되면 사람들은 은혜로운 교회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도 그렇게 보실까?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일천번제를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다. 일천번제를 드려야 복을 받는다는 논리는 결코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천번제 프로그램은 교인들을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게 하여 고통을 줄 뿐이며, 이방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인들이 소원성취를 위해 일천일 동안 불공을 드리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성경의 인물인 솔로몬을 내세우고 성경의 용어를 사용한다고 기독교의 복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은혜의 복음”은 값없이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격이 안 되어도 믿는 자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다. 그래서 은혜의 복음이다. 천일 동안 지성을 드려야 기도에 응답하시거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냥 은혜로 다 주신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만 알아도 일천번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는 모든 복을 다 받은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라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은사(은혜)로 다 주신다고 하시지 않는가? 그러니 제발 일천번제 같은 무거운 짐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지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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