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준 목사의 외침

왜 그렇게 집착하듯이 직분 자를 세우려고 할까? 직분이 계급이 아니고 은사라면 특정 직분에 집착할 것도 없고 계급 승진하듯이 직분이 주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담임

교회에는 목사를 비롯하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이 있다. 교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교회에 있는 직분의 종류는 대동소이하다. 이런 직분을 공식적으로 계급이라고 명시한 교회는 없지만 현실에서 계급으로 느끼는 교인들이 적지 않게 있다. 지나친 표현이거나 오해를 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언제부터인지 교회의 직분이 암묵적으로 계급화된 것이 사실이다.

  계급 사회의 대표적인 집단이라면 군대이다. 군인은 복무연한과 능력에 따라 한 계급씩 단계별로 진급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계급이 존재할 수 없는 교회에서도 진급처럼 보이게 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평신도, 서리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에 이르는 것을 계급의 단계로 느끼게 하는 점이다. 평신도에서 곧바로 장로가 되는 길은 없다. 반드시 집사를 거쳐야만 권사나 장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직분을 계급으로 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과연 이렇게 단계를 두는 것이 성경적인 직분 제도일까?

  초대교회에서는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하나로 보았다(고전12:4~7).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은사와 다른 직분이 주어지거나 직분과 동떨어진 사역을 하는 언밸런스한 현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니 직분만 있지 그에 따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 직분자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것은 직분을 감투로 보거나 명예 계급 정도로 여기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직분을 은사로 본다면 한 계급 승진시키듯 직분 자를 세워야할 이유가 없다. 이를 테면 권사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롬12:8)이기에 집사를 거쳐 권사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권면과 위로의 은사가 분명하다면 일반 성도에서 권사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집사가 섬기는 은사라면 굳이 집사에서 권사나 장로가 될 필요가 있을까? 권사의 은사, 장로의 은사가 없는데도 집사에서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데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장로의 중요한 은사라면 리더십의 은사다. 우리말 성경은 ‘다스리는 은사’(고전12:28)라고 번역했지만 리더십의 은사를 의미한다. 어느 집사가 궂은일을 맡아 섬기는 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런데 리더십의 은사가 보이지 않는데도 기어이 장로로 세워야할까? 직분을 은사로 보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사보다 장로가 우위에 있거나 한 직급 높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장로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목회를 하다보면 “그래도 집사를 수 십 년 했으니 권사는 시켜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건의를 하는 장로나 직분 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심지어 나이 많은 교인에 대해 “명예 집사라도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직분이 있어도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난 교인에게 직분을 주자는 발상은 직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왜 그렇게 집착하듯이 직분 자를 세우려고 할까? 직분이 계급이 아니고 은사라면 특정 직분에 집착할 것도 없고 계급 승진하듯이 직분이 주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직분이 주어져야 헌신도 하고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교인들이 구원 받은 자로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이다(엡1:23, 고전12:27), 때문에 지체들 간의 높고 낮음이란 있을 수 없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는 높고 낮음의 서열이거나 계급이 아니라 은사에 따라 서로 섬겨야할 지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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