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면예배는 드리지만 식사와 교제는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많은 회의들은 화상으로 이뤄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사람 간의 만남이 무너져버린 시기를 살아내야 하니 사람들은 자구책을 찾는 것 같다.

무엇보다 만남이 줄어드니 가족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생긴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만남을 위해서는 준비해야 하는 시간, 오고가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두세 시간이 절약된다. 누구에게 만나자고 하는 것도, 제안 받는 것도 조심스러운 요즘이기 때문에 만남의 횟수는 확 줄었다. 많은 기독교계 단체들과 기독교 회관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5가 역시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이렇게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는 속에서 코로나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점에서 그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깊이 숙고해야 하는 건 아닐까.

교회에 열심이었던 신자들이었다면, 교회를 중심으로 한 봉사활동, 예배 참석, 성경공부 분투 등으로 분주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진정 그 모든 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살펴보면 좋겠다. 자기만족이나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부분은 없었는지, 전적으로 사랑에서 시작되고 이뤄져왔는지….

시인 나태주 할아버지는 ‘풀꽃’이란 제목의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고 노래했다. 나태주 시인은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랑'이 말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면서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순간의 감정으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사랑이 어느만큼인지를 가늠할 수도 없으면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적지않은 사람들이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다. 교회에서 쏟아내는 설교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역시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면 죽음을 뚫고 나오는 생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수님 역시도 이 땅에 오셔서 3년간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끝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실현해 내셨지 않나. 그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복음)인데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세상사( 예수님까지)가 돌아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순절, 코로나 시국에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을 수 있는 은총을 입었으면 좋겠다. 예전보다 시간이 좀 있으니 주님과 대화하자고 노크하시는 소리. 내 마음대로가 아닌 주님이 가리키고 계시는 방향을 따라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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