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 바라 보자 역대하 20:12∼15 유다 왕 여호사밧의 통치 말기에 아마도 권력의 누수현상이 일어났었던지, 매년 정규적으로 조공을 바치던 모압 왕, `메사'가 주변 족속인 암몬 족속과 세일 산에 사는 산 족, 마온 족속들의 세력을 규합하여 큰 군대를 만들어서 유다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그는 대적의 갑작스런 공격 앞에서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 앞에서 도움을 구하는 기도의 사람의 자세로 돌아갑니다. 여호사밧 왕이 이 위기를 당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하여 금식일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느니라…”라고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비결이 되고 원리가 됩니다. 우리는 지금 대적의 공격 앞에 서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단이 성도를 공격해 올는지 모릅니다.초보신앙의 탈피 히브리서 5:12∼6:2 누에가 자라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면 참으로 신비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새끼 개미 만한 까만 누에들이 고물고물 움직이면서 뽕잎을 갉아먹으면 뒷면의 부드러운 부분이 가장 먼저 없어지고 뽕잎의 앙상한 줄기만 남습니다. 이것들이 한 잠, 두 잠, 석 잠을 자고 나면 어른 가운데 손가락만 해집니다. 그때에 잠실에 들어가면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소나기 오는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잠을 자고 나서는 칼로 베려고 해도 잘 안 베어지는 누에고치가 지어집니다. 한 껍질을 벗을 때마다 이들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계속 성장합니다. 우리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껍질을 벗어야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脫皮)라고 하지 않습니까? 본문은 유아기적인 신앙에 머물러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의 미숙한 모습을 보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라고 강력하게 교훈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신앙은 정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영적 추진력을 가졌다는 것이 바로 성장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제나 상승하는 신앙을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1∼6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대변자입니다. 호세아는 바로 그의 생활로써 하나님의 답답한 마음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고멜이라는 더럽고 추한 창녀와 결혼시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꾸만 옛날 창녀의 삶을 못 잊어 남편의 사랑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들을 만나러 도망쳐 나갔습니다. 호세아의 괴로운 마음,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배신을 보는 하나님의 상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5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죄는 지도층으로부터 백성들에게까지 흑사병처럼 휩쓸고 번져나갔고, 나라가 병이 들어 참혹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생은 곤고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병들고 상한 인생을 치료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를 알되, 힘써 그분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기독인의 정체성과 사명 베드로전서 1:13∼16 우리는 큰 전환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치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은 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복음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의 문제와 사명수행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변치 않는 복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무쌍한 현대를 살면서 불변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본문은 먼저 거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은 변함이 없습니다. 거룩함이라는 단어 가운데 다른 하나는 `거룩하게 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동사형입니다. 즉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알았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우리의 사명을 위해 나가야 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서 사탄적인 문화로 변화 되어가는 이 세대를 생명 얻는 불변의 진리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문화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주님의 마음에 합한자 사도행전 13:21∼23 성경에는 마음에 대한 교훈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삶이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 참회하는 마음,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해 들일 때에 성령께서 들어오시는데, 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항상 깨우침의 역사를 하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각성시키시는 은혜라고 합니다. 둘째, 드려진 마음, 성별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마음은 하나님께 드려진 헌신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된 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사용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꾸준한 마음, 일관성 있는 마음 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번 결단한 마음을 꾸준하고 변함없이 지키는 그 마음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를 언제나 평강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인도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성전된 우리 고린도전서 3:16, 17 “너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인 개개인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 개개인은 성령께서 거하시도록 깨끗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합하여서는 안됩니다. 바울 사도은 “내가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으나, 나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16, 17절에서는 창기와 합하면 창기와 한 몸이 되며, 그리스도와 합하면 그와 한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부르셨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놓으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광의 찬송을 부르는 하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원래의 목적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목적이 변질되면 크나큰 비극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성도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군으로 부르셨다면 그분이 가지고 계신 원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가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들과 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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