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교단에 다니고 있는 서모 집사는 올해 추석 역시 걱정이다. 시댁식구들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설이나 명절때마다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집안으로 시집을 온 자신의 잘못이라고 탓해보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올 추석도 역시 서 집사는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보내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제사는 크리스찬들에게 있어 `계륵'과 같은 존재이다. 제사를 지내기도 뭣하고 안지내기도 뭣하는 그런 존재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사는 우상숭배인가? 제사는 한국의 오랜 전통적 유교문화이기 때문에 제사를 금기시하는 기독교와는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감신대 종교사회학 이원규 교수는 “제사문제는 한국교회가 우상숭배라 하여 처음부터 거부했던 것에 비해 다수의 한국인들은 제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위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도시주부들의 가정 생활관과 제사행위'에 대한 박순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추석이나 설 등에 조상에 대해 전통식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조사 대상자(369명)의 70.8%에 이르고 있다. 일반신도들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교계 지도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류성민 교수(한신대 종교문학과)의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의 의식에 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전통 유교식 제사에 대해 승려의 2.2%, 신부의 13.5%만이 반대하고 있으나, 목사의 경우 무려 92.1%나 반대하고 있어 제사 문제는 특히 개신교에서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간의 이런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간격을 좁힐수는 없는 일일까? 과연 제사란 크리스찬에게 있어 무엇일까? 제사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령에게 정성을 표하는 예절'이라고 나와있고, 영어로는 `sacrificial rites'(희생의례) 혹은 `religious service'(종교적 봉헌)로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원래 제사는 초월적인 절대자에 대한 종교적 의식이라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사실 제사라는 말은 기독교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라며 번제, 화목제, 소제 등의 말 등이 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유교적 입장에서 보면 제사는 말 그대로 `부모와 조상이 마치 살아계시듯 모시는 효의 표시인 것'이다. 이 교수는 “전통적 제사에서는 제수(祭需)를 마련하고, 지방이나 신주의 신위를 모신다. 제사의 절차도 혼백을 부르고 축문을 읽고 술을 바치고 수저를 꽂으며 차를 바치고 혼백을 보내고 상을 치우는 등 매우 복잡”하다며 “이렇게 돌아가신 분을 신격화하고 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물질에 절을 하며, 그의 혼백의 강림을 믿는 행위는 확실히 숭배 행위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제사는 무조건 거부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라고 반문한다. 이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전통식 제사에서는 정령식 신앙관과 결합된 세계관 생사관으로 인해 실제로 죽은 자의 혼백이 있어 음식을 받아먹고 절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현대사회에서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즉 현대사회에서 제사란 제사행위를 통하여 다시금 효의 의미를 생각하고, 죽었으나 아직도 후손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부모 혹은 선조와의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문제는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예컨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었으나 그들의 얼은 모든 유대인 후손들에게,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심어졌고, 이렇게 그들은 오래 전에 죽었던 조상과 영적인, 정신적인 유대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족보와 혈통도 결국은 이미 죽어간 모든 사람들과의 연계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한다.  진보순복음교회 배종빈 목사는 “제사란 우리나라의 유교적 전통이지만 분명 기독교와는 상반된 부분이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제사의 대상만 틀릴 뿐이지 속에 가지고 있는 본질은 똑같다”고 말했다. 배 목사는 또한 “신앙인으로서 자기 십자가를 생각하고 어렵겠지만 일상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과 우상숭배의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제사가 가지고 있는 역기능이 있다. 음식을 형편 이상으로 많이 차려 가산을 축내는 경우도 있고 너무 형식에 치우쳐 참된 의미보다는 격식을 차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미신적 신앙관에 사로잡혀 그릇된 사생관을 가지게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수백년 수천년동안 뿌리 내렸던 제사가 수행해왔던 중요한 기능들도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사를 지내는 날이 곧 귀향의 날이 된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모인 가족들이 서로간에 정을 쌓고 교제를 나누면서 공동체를 이끌어왔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또 친교의 시간을 가지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이제 “제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제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가 문제일 것이다”라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나 그릇된 관념과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제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지키고 있고 제사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거부감 때문에 개신교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커다란 `시험'이 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교회의 공식 입장은 제사문제에 대하여 부정적이지만 실제로는 개신교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제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제사가 지니고 있는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교수는 “아직도 조상들의 실제적인 영이나 혼백이 떠돌아다니고 제사 때 와서 음식을 먹는 것으로 보고, 따라서 제사상에 신위나 신주를 놓고 실제 상황처럼 절을 하는 식의 숭배 행위는 물론 기독교 신앙과는 배치되는 일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만일 제사행위가 앞에서 말한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이고, 다만 조상들과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상징적 절차에 불과하다면 이것을 미신적이라 하며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기독교는 무엇보다 사람들의 더불어 사귐, 나눔, 만남을 강조하고, 혈육의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중요시 여기며, 혈통과 가문의 유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부모에 대한 효는 살아 계실 때 해야 한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도 그분들을 생각하고 반성하며 후손에게 교훈적인 권고와 정감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제사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기독교안에서 논쟁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없이 거대담론만 무성한 상태이다. 많은 신학자들과 교계지도자들이 거대담론으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사이 현실에서 부딪쳐야 하는 일반신도들은 이번 추석도 마음졸이며 지내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다.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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