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0:30∼37
 
  문득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이순(耳順)'이라는 벽시계가 보였다. 참으로 바삐,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숨을 한 번 길게 몰아내 쉬어보았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또 다른 `나'이지 싶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함께 가겠노라고 꾸린 짐이 아직도 내 등 뒤에 매달려 있다. 바로 `목회'라는 짐 꾸러미다. 참으로 많은 사연과 함께 희노애락이 순간적으로 하나가 되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도, 무의미한 것도 없는 소중한 것들이지 싶다. 그렇게 난 목회와 더불어 함께 살아왔다. 또 다른 나와 하나가 되어서 말이다.
지난 2006년 10월 27일 감리교 제27대 총회에서 제16대 남부연회 감독으로 취임했다. 지금까지 내가 꾸린 행장 중에서 가장 무겁고 외로운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도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언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여정의 길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배웠다. 특별히 이 시대에 교회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 대해서 말이다.
교회는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이 교회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교회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아울러 교회가 교회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가슴 아픈 현실을 낳게 되었다. 그 진통 속에서 나는 참으로 남몰래 많이 울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을 책임지고, 하나님께 인도해야하는 감독으로서 한계를 느끼면서 말이다.
나는 세상을 향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목사이다. 신학적인 펜 끝이 짧아 부끄럽지만, 내가 공부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보편적이며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배웠다. 신약성경 딤전 4:4절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존재 자체로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에는 그 어떤 이유도 필요가 없다. 오직 인정, 받아들임만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시대 무리 중에는 위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즉 자기들만의 편협한 생각과 해석으로 인해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간학문 통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도 한 학문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fact’가 아니라 의미와 해석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의미와 해석인가는 더욱 중요하다. 나를 위한, 이웃을 위한, 세상을 위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된다면, 아마도 허허벌판 속인 광야와 홍해 앞에서 나 혼자 서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미국 유학시절, 가슴 아팠지만 아주 따스한 기억이 잠깐 나의 호흡을 멈추게 한다. 사랑하는 내 아내는 공부하는 나와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돌보고 챙겨서 학교에 보내는 일은 나의 몫이었다. 공부 밖에 해본 것이 별로 없는 내가 그 일을 잘 할 리는 만무하였다. 그러다가 미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 녀석에게 학교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곧잘 밥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하였다. “아빠, 학교에서 아침밥을 먹는 아이들은 아주 극빈자들만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극빈자에요?”라고 말이다. 그때 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극빈자라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가야 한단다”라고 말이다. 아울러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면서 “너도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네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을 꼭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장성하여 이제는 제법 남을 돌보고 배려하며 사랑을 나누는 아들로 성장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받았다. 세상이 있었기에 교회가 존재한다. 이제는 교회가 세상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이다. 기독교인만 아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교회가 교회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어느 시대에든 억울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들과 함께 있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세상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바로 예수님처럼 말이다.
·선화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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