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을 타고 안산역에서 내리는 곳이 안산시 원곡본동이다. 역 앞에 있는 지하도를 건너 밖으로 나오면 약 300m 정도의 골목길이 눈에 펼쳐진다. 그곳이 바로 안산시 `국경없는 마을'이다. 지난 토요일 찾아간 안산 `국경없는 마을'은 생각보다 국내인이건 외국인이건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마다 한글 외에 영어와 중국어가 같이 붙어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동네와 틀린 점은 없어 보였다. `국경없는 마을'임을 확인하기 위해 몇 몇 사람에게 길을 물어봤지만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설프게 `한국말은 잘 모른다는 것'. 낯선 사람이 길을 물으면 일단은 경계를 한다는 주민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길을 물어보는 것을 자제했다. `국경없는 마을' 입구에서 1년 전부터 슈퍼를 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많다고 하니까 범죄도 많고 이상할 거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단지 피부색만 틀릴 뿐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또 “같이 청소도 하고 하니까 친해진다”며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아주머니의 칭찬은 끝이 없다.  실제로 다른 동네들과 차별점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기에 오히려 이상할 거라고 생각했던 선입관이 잘못됐음을 알게 되었다. 단지 틀린점이 있다면 슈퍼나 가게 곳곳에 `전화거는 집'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이 고향으로 전화를 많이 하기 때문에 곳곳에 그런 푯말이 붙어있다고 한다. 이곳에 터전을 잡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1만 5천여 명, 유동인구까지 포함하면 2만여 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생활을 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센타 앞에서 만난 료 씨라는 성을 갖고 있는 중국인은 “외국인노동자센터내에 있는 교회를 다닌다”며 “살기가 아주 좋다”고 어설픈 한국말로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외국인 남자 3명은 “염색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면 50만원 정도가 손에 쥐어진다”며 “일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고 말했다. 안산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은 지난 '99년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박천응 목사가 `국경없는 마을'이라 이름 붙인 후 올해 초 국내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함께 `국경없는 마을' 추진위원회를 설립함으로 탄력을 받았다. 이들은 몇 번의 회의와 만남 끝에 이 곳의 쓰레기 문제를 마을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최우선의 문제점으로 꼽은 후 매달 첫 번째 토요일 국내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여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 동안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 막연하게 선입견을 갖고 있던 것이 없어졌고 오히려 더 친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안산은 공단이 생긴 이후 한국인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IMF이후 한국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노동자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이곳 원곡동이 외국인노동자들의 근거지가 된 이유도 이곳이 지리적으로 모든 교통수단의 통로가 되어 반월과 시화 공단을 가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 곳에 원래 살고 있던 한국인 집주인들이 자신들도 먹고 살기 위해 방을 내주기 시작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은 더욱 더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난 99년 1차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 추진위원회는 의식적으로 국내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가까워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했다. 국경없는 마을 탄생의 산파역할을 담당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마을 체육대회 등을 통해 국내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의 만남을 주선했고 그 결과 전에 보다는 서로가 많이 이해하고 친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박천응 목사는 “문화는 주어진 자연(自然)이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서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 모든 이가 차별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 창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안산이 과거에 농어촌 문화였다가 공단 도시문화로 변하였듯이 `생존과 경쟁의 문화' 인 오늘의 안산의 문화를 넘어 대안 문화로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의 창조적 노력과 변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자주 얼굴을 부딪히고 살을 맞대며 살아가니 친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분식집을 하고 있는 이 모씨는 “처음에는 이상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같이 청소나 잔치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며 “이제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우리 사위 삼자는 농담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원곡동 주민들이 외국인노동자와 친한건 아니다. 신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아주머니는 “밤마다 중국교포들이 싸움과 고성방가를 해 시끄러워 잠도 못잘 지경”이라며 “하루 빨리 이사를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조금 떨어진 지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한 남자도 “국경없는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살아보면 그런 말이 안나올 것”이라고 탄식했다.  박천응 목사는 “의식적으로 주민들이 외국인노동자들과 친해지려고 많이 도와주고는 있지만 아직도 갈등은 존재한다”며 “특히 중국교포들을 중심으로 치안문제가 걱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그러나 “원곡동의 50% 이상이 외국인노동자들이고 외국인노동자들과 관련된 것은 장사가 잘된다. 사실 외국인노동자들이 이 곳에 들어와서 죽어가던 마을을 살린 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산 `국경없는 마을'은 이렇게 국내인과 외국인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년 3월부터 시작되는 불법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단속 때문에 국내인이던 외국인이던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외국인노동자들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단순히 우리가 기피해야 할 이상한 존재일까? 아니면 같이 살아가야 할 정다운 이웃이요 형제일까? 국경없는 마을은 우리가 후자의 선택을 해야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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