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인간적 신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보고
온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만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 ▶ 눅 19:11∼27
 
본문에 귀인이 먼 나라로 갔다고 합니다(12). 이는 주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 각 종들에게 므나를 맡겼는데 이처럼 주님도 승천하실 때에 우리에게 각각 사명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주님의 뜻에 충성하며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충성된 종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주인은 이윤의 정도에 관계없이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할 것입니다(17). 또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주님이 오실 것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고후 9:6, 마 9:22). 하나님은 우리가 확신한 만큼 우리의 인생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기도:주님!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  민 14:1∼10
 
본문에 보니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총 열 두 명을 택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습니다.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자신들의 신념을 보고 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강한 이방 민족들에 대해서 즉, 가나안 땅의 절망에 대해 보고하며 두려워하고 또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민 13:28∼29, 14:1∼3). 반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뜻을 보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이 아름다운 땅이라며 기뻐했습니다(7∼9).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인간적 신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보고 온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만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영적 상태이며 우리 믿음의 현 주소입니다. 보이는 것만을 좇는 사람에게는 결코 소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좇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히 11:6) 소유한 자에게 가나안이라는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기도:주님! 인간적 신념이 아닌 하나님 뜻만 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모든 것을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 갈 6:1∼10
 
우리는 무엇인가를 뿌리고 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항상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심을 수 있어야 합니다(갈 6:8). 그 때에 우리는 감사할 것들을 거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씨를 뿌릴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9). 이 말은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늦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지금까지 우리가 온전히 살지 못했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면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하여 인생 가운데 감사를 심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혹, 삶 가운데 감사의 조건이 없다면 감사의 조건은 우리가 처한 처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있음을 깨닫고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그 때에 우리는 감사를 심었기 때문에 감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불평을 심었기 때문에 불평을 거두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항상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래 위에 지은 집  ▶ 창 13:1∼13
 
본문에서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땅은 눈에 보기에는 좋은 땅이었습니다(마 7:24∼27). 하지만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만연하여 심판이 임박한 땅이었습니다. 롯은 영적 통찰력을 갖고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롯은 눈에 보이는 대로만 소돔과 고모라를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통찰력있게 삶을 바라보고 영적인 각성 가운데 살아가지 않으면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그러한 삶은 무너지게 되있습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대로 롯이 선택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영적 통찰력 없이 넓은 문, 좋은 길을 걸으면 그 길에는 멸망만 있을 뿐입니다(마 7:13). 우리도 오늘 롯과 같이 눈에 보이는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눈에 보기에는 좋지 않아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까? 우리는 눈에 좋게 보이는 곳에 집을 짓지 말고 영적 통찰력을 갖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인간적 뜻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좇기를 바랍니다,
▶기도:주님! 영적 통찰력을 갖고 하나님의 뜻만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너의 삶을 주께 드려라①  ▶ 막 14:1∼14:10
 
본문에 보니 예수님은 자신의 문둥병을 낫게 해준 시몬이 베푸는 잔치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전한(pure) 나드 한 옥합(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했을 지도 모르는)을 깨트린 후 그 안의 향유를 모두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당시 근동지방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향유를 한 두 방울 머리에 떨어트려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소유한 옥합을(약 2천만원 상당) 깰 뿐 아니라 모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3). 마리아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되시며 옥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 가치를 지니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진정한 절대적 가치인 것을 깨닫는 자만이 옥합을 깨고 향유를 모두 예수님께 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옥합 즉, 우리의 삶을 모두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기도:주님! 옥합과 같은 우리의 인생을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나를 넘어제기 하는 사람 ▶ 로마서 7:15∼25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원수 마귀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합니다(롬 8:23, 고전 9:27). 바울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그 안에 육신의 자아가 나온다고 말합니다(롬 7:19). 이 자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의 뜻 안에서 자기 자신이 죽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안에서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 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느낄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남을 깨달았습니다(고후 12:10). 성령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서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이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능력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주님의 능력만을 우리가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이제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자아를 복종시키는 것이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이기는 길임을 기억하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주님! 주의 말씀에 복종함으로 나를 넘어지게 하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김기덕 목사(소망교회 담임)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