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적 ▶ 마태복음 21:1∼17
 
예수님을 배신했던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통회하며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주님의 수제자 사명을 다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기 때문에 당당하게 승리하신 모습으로 이해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전자(마 13:22∼30)에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자들에 대해 말씀 하신 후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시며 마지막 예루살렘의 방문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자였고 잔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죽음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음을 직감하시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셨습니다. 한편 로마의 영화도 지고 예루살렘도 멸망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흉악한 계획도, 정치적 희생양이 되시는 것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검의 자리로 뚜벅뚜벅 당당하게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삼일 만에 다시 부활 하셔서 예루살렘의 동요가 다시 재연된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은 물론 우리 인간의 영혼과 육체 생환의 자리에 계십니다.
▶기도:죽음의 자리에서도 의연케 하시며 불의 앞에 비굴치 않게 하소서. 아멘.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예수님  ▶ 마태복음 21:12∼17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베다니로 가셨다가 다음날 아침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정화의 채찍을 드시고 장사꾼도 내쫓으셨습니다. 그후 낮고 천한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타락한 성전을 그냥 방치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교훈 하시고 있습니다. 성전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과 보이지 않는 성전이 있습니다. 현시적 성전은 영적 성전의 표출이며 주님이 좌정하신 우리의 몸입니다. 따라서 항상 청결하며 순수하고 타협의 여지를 배제해야 합니다. 깨끗하고 거룩해야 될 성전은 외적인 우리 육체요 내적인 우리 마음입니다. 거룩해야 될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속은 항상 경계하며 주님께 가까이 가야겠습니다. 성산 장기려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립니다. 6.25 때 평양에서 부산으로 피란하여 천막 병원을 시작하여 95년 생을 마감할때까지 오로지 가난 한 환자들을 돌보며 45년간 북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해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곧 마음이 성전이었습니다.
▶기도: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말씀과 기도로 깨끗하게 하옵시며 정욕과 욕심으로 더럽히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과부의 렙돈 둘  ▶ 마가복음 12:41∼44
 
물질은 생활을 위한 수단입니다. 풍족한 자의 물질은 자유롭지만 부족한 자의 물질은 생명이기 때문에 부자유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자들은 헌금함에 많이 넣었지만 이 가난한 과부는 두렙돈 밖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렙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며 우리 돈의 십원 같은 돈을 말하며 고드란트는 당시 로마의 화폐였으며 두렙돈은 한 고드란트와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과부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녀는 아주 적은 것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그것이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최선을 다한 연보와 의식의 연보 차이입니다. 현대는 물질 만능 시대입니다. 물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물질의 과소가 능력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 물질이 연보궤에 넣어져야 합니다. 과부의 부끄러운 손이 되어…. 우리가 풍족한 것이나 가난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하여 헌금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 물질만 쫓는 것은 제2의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이 물질이 하나님께 돌려드려져야 합니다. 소유할 만큼 나의 분복을 갖고 선용하며 살아갈 때 물질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진 것에 만족하게 하시고 적은 것도 전부를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과부의 정성과 진정이 있게 하옵소서. 아멘.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 마태복음 26:69∼75
 
예수님께서는 재정을 맡았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가장 믿었던 자에게 상처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베드로로부터는 저주까지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야바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베드로는 뜰에서 재판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에 비하면 좀 의리가 있는 같았었습니다만 비자(婢子) 앞에서의 비굴한 모습은 그가 과거 수제자였나 의심케 합니다. 자신의 신분 노출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의 시대에 감히 목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예수님 부인은 일찍 예고되었습니다. 그는 멀찍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여차 하면 도망가려 했습니다. 벌써 불신과 배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과 약속한 “내가 죽더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는 호언은 헛 맹세가 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자기방어에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닭 울음소리에 잃었던 자신을 찾았습니다. 그후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통회하며 뉘우쳤습니다. 이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제2의 베드로가 나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부인하고 삽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년에 로마의 핍박 시 가야바 뜰의 예수님을 다시 만나 약속을 지켰습니다.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주님의 수제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기도:내 목에 테인 십자가를 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소서. 아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 마태복음 27:27∼56

예수님께서는 재판을 받으시고 모욕 당하신 후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십자가는 나무로 만들어져 종목과 횡목으로 교차되었으며 사형자 죄수를 벌하여 죽게하는 칼타고 사형 집행기구로, 로마가 죄인들과 기독교인 박해용으로 도입한 잔인한 사형도구였습니다. 그 외에도 로마는 기독교인들을 무시무시하게 살해 하였습니다. 톱으로 인육을 썰어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했으며 높은 곳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였고, 심지어 산사람을 등을 맞대어 묶어 놓고 서서히 죽어 가도록 했습니다. 산채로 구덩이에 넣고 흙을 목까지 채워놓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 을, 밤에는 어두움과 두려움으로 고통당하다가 죽어가게 했으며 굶은 사자의 밥으로 화형에 처하며 기독교인을 박해했습니다. 이처럼 박해로 잔인하게 멸절시키려 했던 기독교는 지금 더욱 왕성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십자가를 땅위에 내려놓고 그 위에다 사람을 올려놓은 다음 손과 발에 못을 박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못박힌 사람을 십자가와 함께 똑바로 세워 고정을 시켰습니다. 그러면 못박힌 사람의 체중이 못에 의지하기 때문에 밑으로 쏠리게 되는데 고통은 말할 수 없으며, 끝내 처참하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당하시며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하여 지신 것이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도:주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부활 하셨습니다  ▶ 마태복음 28:1∼10
 
예수님께서는 바위 동굴 속 무덤에 장사되어 엄청난 무거운 돌로 막아 누구도 시신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그 큰 돌은 사람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열려졌으며, 시신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무덤은 3일동안 잠시 머무신 안식의 장소였습니다. 이는 부활의 기쁨을 향한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망을 다시는 불신자들의 주장이 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확인시킨 사건입니다. 부활을 막으려는 인간의 완력도 허사가 되었고 파수꾼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신 사건입니다. 이같은 주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소망과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셨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신하며 우리도 다시부활 것을 믿습니다. 또 모든 곳에서 육적 부활이 영적부활이 일어나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 하시기 전 지상 대명령을 주셨으므로 이 명령을 수행하여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혼신을 다해야겠습니다.
▶기도:우리가 주님의 남은 육체가 되게 하시며 주님의 구원 사역의 일익을 담당케 하옵소서. 아멘.
 
구택회 목사(점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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