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축민에게 기반을 둔 기독교는 살생(殺生)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 인류의 출발선에서 형제간의 살인사건이 농경민을 대표한 가인이 목축인 대표랄 수 있는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형제간의 살인사건이 있었으나 이 사건이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도 기독교나 그 전신(모체)인 이스라엘 민족 신앙의 특성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비로소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칼 쓰는 행위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듯 베드로의 칼에 잘린 말고의 귀를 치료해 주신 일이 복음서 내용에 있다. 물론 이 한 구절만을 가지고 기독교의 살생이나 폭력에 대한 적극적 견해라고 하지는 않겠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사야 2장 4절에 `…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고 밝히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은 물론 개인들의 충돌로 인한 폭력 그 자체를 거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얼마전 특정 종파나 종교들의 신자들이 집총 거부, 곧 총을 손에 잡는 것마저도 거부한다는 신앙적 요구가 병무 당국을 설득해 가고 있다. 이는 상당한 기간 시비가 있었으나 묵살되었고 입영 대상자 자신은 병역의무 불이행자가 받아야 하는 형벌을 감수해야 했었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개인의 양심이 존중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렇다면 신앙을 이유로 군생활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과 국가간의 배려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또는 해당 국가와 주변 현실이 과연 개인의 가치가 최대한 존중될 수 있는가가 참고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군 입영자가 자기의 신앙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다. 그것을 정부가 받아준다. 그러나 군생활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신앙을 빙자했을 때 나라의 국방문제는 어떻게 될까.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신앙양심은 존중하나 군복무는 피할 수 없다가 되든지, 개인의 신앙을 존중받는 대가로 군복무 기간을 훨씬 능가하는 사회봉사를 하는 대안이 있을 것이다. 또는 국가 현실의 상황을 존중하여 나라가 통일되고, 외침의 우려가 없는 등의 경우에만 병역의무를 선택하며 모든 개인은 국가 공동체의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병역의무와 신앙양심의 문제를 보다 널리 공론화 하면서 우리 국민의 불살생 정신을 함양하는 노력을 함께 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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