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기미년 대한 독립만세를 불렀던 그 해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83년이다. 아득한 저 멀리의 날이다. 기독교 한국시대가 40년 역사 미만인 정도에서, 그때 한국 기독교의 역할은 가히 칭송을 받을 만큼이었다. 당시 33인의 비중으로 보거나 또는 전국 교회의 조직망, 활동의 기동성 등등에서 3·1운동기의 기독교 역할은 대단했었다. 교세로 볼 때 요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실력이었으나 우선 모든 교파가 함께 움직였으며 목사나 일반 신도들도 구분을 느낄 수 없을 만큼으로 단결된 모습이었다. 물론 3·1운동을 통해서 일본에게 병합되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어려워지자 기독교 신자들 중 일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 운동 쪽으로 선회했던 일, 교세의 위축, 지도자 빈곤으로까지 상황이 좋지 않다가 3·1운동 여파로 일본이 한동안 느슨한 통치를 하다가 30년대에 들어서서는 민족 지도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소위 `신사참배' 문제로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했다. 신사참배. 그때 한국교회가 골병이 들었다. 일본의 회유와 억압의 시간들 속에서 당시 한국교회는 일본이 요구하는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라는 빗나간 변명을 하는 무리들이 다수 생겨났으며, 그것은 명백한 우상숭배가 된다는 순수파들과 충돌 또는 배신과 분열현상이 생기면서 한국교회는 불순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1천만 신자시대를 맞아서 세력을 뽐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외형상 한국교회가 지닌 실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없지만 `우리 허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정직한 기독교 신자들이 없다. 이들은 그때 3·1만세 시절에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며 민족의 자주 독립을 열망했던 순절과 충의로 단장된 인격있는 신앙의 선열들의 역사를 공부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 현대사는 남북의 분단으로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재작년 6·15 선언이 있을 때만 해도 한 발 앞당겨지는가 했으나 요즘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3·1만세 그 시대의 정신을 다시 가꾸어 민족의 향후를 빛낼 수 있는 자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3·1운동 시 도둑맞은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그 자세로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대한의 날을 여는 공헌을 했으면 한다. 만약 기독교가 이만한 일을 해낸다면 분명 한국교회는 21세기의 책임집단으로 무한 뻗어나갈 힘의 존재가 될 것이며, 세계 기독교사는 물론 한국사의 명예로운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는 생각만 해도 가슴에서 힘이 솟는 감동적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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