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세계정상급 수준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축구가 확 달라졌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볼 때 대단한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1년 반 전에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 감독 히딩크의 지휘에 의한 변화라고 한다. 물론 한국 선수들의 잘하고자 하는 의욕이 함께 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히딩크의 과학축구를 한국기독교와 비교를 해 본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력, 기술, 성격 등을 조련하고 경쟁 상대를 목표하여 다각적인 전략 등을 세우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한국교회는 전체교회의 숫자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얼마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도하고 하나님 괴롭히면 다 되는 줄로 알지만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차원이고 한국교회는 조직이고 그 조직을 움직이는 합리적인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 분명 축구선수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교회는 교회 전체를 위하여, 또는 교회를 이땅에 있게한 국가나 정부에 대한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 이는 입장에서 매우 답답함을 느낀다. 시대가 첨단 과학의 힘을 앞세우고 있는데 부족장 시대의 영웅주의에 매달려 있는 교회가 안타깝다. 더구나 내용에 있어서 보면 더욱 한심하다. 내용이라 함은 교회의 복음적 자세를 말하는 데 대다수가 예수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율법(주의)의 노예가 되어 엉뚱한 것에 굴복하고 있다. 요한복음 5장을 펴면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못가에서 처량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와서 병고침을 받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거기서 `살고 있었다.' 베데스다에서는 병고침의 사건이 필요하지 거기에서 먹고 살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는 대책이 없이 38년을 허송했다. 이것이 율법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시나이 광야 40년(38년) 율법에 사로집힌 모세와 히브리를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율법의 사슬에 묶였다. 그래서 자기 자랑만 하고, 분파주의, 인간주의, 세속주의, 자기 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벗어나야 한다. 한국교회에서도 시대를 분별하여 교회다운 교회로 이끌어갈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한국 축구의 히딩크처럼 한국교회의 앞날을 새롭게 이끌어갈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책임감을 생각할 때 시급하게 서둘러야 한다. 교회 스스로 책임질 일이 아니다. 이 땅에 교회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지불한 희생에 대한 보답, 그리고 한민족이 교회를 용납한데 대한 보은을 위해서도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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