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성탄주간 모 방송국은 `2000 한국의 대형교회들'이란 시사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몇 몇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비판한 이 방송국은 방송전이나 후로 많은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프로그램에 방영된 교회들의 압력이 거세지자 한국교회는 교회언론대책위를 만들어 언론들의 교계보도 행태에 대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당시에도 일부에서는 “교회문제는 교회 자체적으로 풀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시각과 “이미 교회는 자체 정화시설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더 이상 썩어들어가기 전에 도려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국을 `사탄의 자식' `교회를 훼파하려는 사탄의 계략' 등으로 몰아세웠다는 점이다. 집회신고를 내고 집회를 하기도 하고 예배당에서 성도들과 함께 방송국을 성토하는 기도회 아닌 기도회를 개최했다는 점이다. 종교와 권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종교는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으며 권력 역시 종교의 눈치를 보게 된다. 5공과 6공 시절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국가원수를 위해 조찬기도회를 가진 것만 봐도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199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53.6%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불교 26.3%, 기독교 18.6%, 천주교 7.0%로 종교인구의 50%정도가 기독교, 불교, 천주교에 집중돼 있다. 또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회, 사찰, 성당의 수는 한국의 모든 학교총 수의 3배나 된다고 한다. 실제로 밤에 높은 산이나 타워 같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바라 보면 빨간 십자가 밖에 안 보인다는 소리도 있다. 간혹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에게 전도나 포교를 할라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교회나 사찰이 그렇게 많은데 아직도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도덕성이 타락하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라고 물으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또한 1993년 11월 당시 문화체육부에서 발간한 `한국의 종교현황'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는 당시기준 4천450만여 명을 훨씬 뛰어넘는 6천630만여 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에 대해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종교는 영원한 성역인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재미있는 통계 역시 한국사회가 종교를 성역과 금기로 모시고 있다는 걸 의마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며 “각 종교가 자기들의 세를 부풀리고 보겠다는 전형적인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중독돼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다. 재미목사 조찬선 목사 역시 `기독교 죄악사'란 책에서 “성당의 우렁찬 종소리와 미사도, 교회에서 새벽마다 울부짖는 통곡의 기도도 , 절간의 목탁소리도 민족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증거인가? 혹은 한국의 종교들은 각 개인의 축복과 구원만을 추구하는 이기집단인가”라며 “수 많은 헌금을 거둬들이면서도 국민과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종교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위에서 보듯 종교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성역이 되어 버렸다. 그 누구보다도 깨끗해야 할 성직자들은 권력과 결탁해 우매한 신자들을 양산시키고 또한 신자들 역시 성직자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행하고 보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득훈 목사는 “교회에서 권력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며 “영적권위란 말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이 영적권위는 힘을 막 휘두르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영적인 권위가 나온다”고 말했다. 종교권력의 문제는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교 역시 지난 1999년 조계사 폭력사태에 이어 2000년에는 조계종 총무원 재정과장과 조계사 신용협동조합 과장이 신협자금 84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권위주의 역시 예외일 순 없다. 서강대학교 서공석 신부는 `교회는 왜 부도나지 않는가' 라는 글에서 “권위주의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 가톨릭만큼 찬란한 데도 없다”며 “한번 교구장이 되면 75세까지는 교구장으로 있게 한 현행법 자체가 오늘날 상식과 인간조건을 완전히 무시한 제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종교문제는 금기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일간지 기자는 “특히 교계기사는 잘 써야 된다”며 “신성한 종교의 문제를 세속의 잣대로 들이대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종교의 치부를 드러낼 경우 종교의 가장 큰 핵심인 선교 및 포교에 장애가 된다는 점도 종교문제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까닭이다. 때문에 내부의 자체적인 비판에는 여전히 문을 닫은 채 결국은 상처가 곪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박득훈 목사는 “원칙적으로 종교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푸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 문제는 자체비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 목사는 이어 “현재의 모습은 교회의 진정한 권위는 사라지고 교회의 지도자들만이 권력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성도들과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성경을 왜곡시키는 모습은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종교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종교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에 대한 비판을 요구하는 일반인들의 생각은 당연하다. 그런데 종교내부에서는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강준만 교수는 특히 기독교에 대해 주목하며 “신도들의 인구학적 속성으로 보건 열정으로 보건 금력으로 보건 가장 강력한 힘은 기독교에 있다”며 “기독교가 지금처럼 사회적 도덕과 개혁을 외면하는 기복신앙에만 머무른다면 한국사회의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정말 아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종교는 귀를 열어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들만의 동굴에 앉아 세상과 뒤떨어진 생각과 담론만 이야기한다면 분명 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우리끼리 사회 변화의 물결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잔소리꾼'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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