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희망한다” `녹색당'은 여성정당으로 불리지만 “ 남성 반대하는 여성운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밝혀 페트라 켈리. 독일 녹색당 창당, 티베트 독립을 위한 운동, 독일 통일의 숨은 주역, 세계소수민족의 인권을 위한 투쟁, 반전반핵 운동, 이토록 숨가쁠 만큼 많은 일을 했던 사람, 그녀의 이름이다. 1992년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페트라 켈리는 인류에게 사랑, 평화,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페트라 켈리 `라는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는 녹색신화로 남아 있다. 1947년 피폐한 전후 독일의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와 정치에 대한 남다른 식견과 자질을 보이며 성장했다. 그녀는 인종차별, 냉전시대의 쿠바사태, 구 소련의 무력 앞에 무너진 프라하의 봄을 목격하며 정치적 안목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환경, 인권, 평화를 기치로 내걸며 `정당반대당'을 표방한 `녹색당'을 창립하고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선다.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정치판에서 치밀한 논리와 화려한 논변으로 당당하게 맞선 그녀는 고르바초프, 사하로프, 호네커 등을 직접 면담, 동시에 동독 인권 투쟁을 지원해 독일 통일의 실질적인 주역이 되기도 했다. 독일에서 녹색당은 여성의 정당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다른 정당과는 비교 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당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실제로 초대 공동 대표이자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세 명 중에는 페트라 켈리와 마리루이제 백 등 두명의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정치가 부재한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놀랍고 기이하게까지 여겨질 것이다. 오늘날 여성은 단지 남성의 반대가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실패한 획일적 남성정치를 극복하고 억압받는 다른 목소리에 귀기울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페트라 켈리는 단지 여권시장을 도모하는 협의의 페미니즘을 넘어선 인권, 평화, 소수민족 보호라는 광야의 휴머니즘을 실천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단지 남성에 반대하는 여성운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페트라 켈리. 그녀는 집에서 의문사를 당하기 전까지 인권운동과 반핵운동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녹색당 내부의 반발을 겪어야 했고 결국 죽음으로써 미완의 신화로 남게 되었다. 이후 녹색당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초기의 노선 중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기성정당인 사민당과 손잡고 집권당이 되었다.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는 유연성. 그 안에서도 한결같이 목표로 한 가치를 버리지 않는 일관성은 바로 페트라 켈리의 유산에 다름 아니다. 그녀가 없었더라도 녹색당은 존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없었다면 녹색 신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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