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말할 때 자꾸만 근세사, 또는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그 성을 멸망시켰을 때 이후를 말하는데 그 정도의 해석법으로는 유대교나 기독교의 마음에 이해가 올지는 모르나 팔레스타인 즉 고대 가나안 경내의 사람들 생각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의 이야기이지만 아담과 이브, 가인과 그의 아내, 또 그 자식들, 노아의 일부 자식들, 아브라함의 자식 이스마엘, 롯의 서글픈 자식들인 모압과 암몬자손들, 그들은 비록 친 아비와 딸들 사이에 나왔어도 아브라함의 조카 자식들이다. 아브라함의 큰 손자 에서와 그 자식들, 그리고…. 이스라엘 즉 이삭의 직계들에서 탈락된 자의 제외, 선택에서 제외된 자들의 모든 후예들을 생각해야 한다. 왜 옛날 이야기를 하느냐? 하려들지 말자, 모든 인생사는 그 원인과 귀결점이 있는 것이다. 그들 약속의 자손들에게 밀려난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식이라해도 팔레스타인의 떠돌이이며 그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원수들 이름으로 그 땅을 지키고 있다. 그들 이스라엘과 이스마엘 자손들은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후 함께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유대교가 예수를 배반했고 기독교 또한 유대교적 한계에 붙잡혀 예수께서 제대로 그 백성들을 구원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사실, 기독교가 예수를 제대로 배웠다면 오늘의 인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기독교 사람들이여,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라.  예수 우리의 그리스도는 모든 인생과 만물의 해법(解法)이시다. 그분이 해결할 수 없는 난제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와 유대교가 예수의 손발을 묶어 그분의 사랑이 팔레스타인 하늘 아래 임할 수 없게 하였기에 인류는 더불어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는 것이다. 판세를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 최소한 오늘의 팔레스타인은 억울하다. 또 어떤경우는 무죄라 할 수도 있다. 너희에게는 팔레스타인이 개, 돼지나 마찬가지인가? 그러면 기독교도 이방의 자식들로 너희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주워 먹기에도 황송해야 한다. 유대인의 혈통적 오만, 기독교의 열등감으로의 위선이 팔레스타인 그 땅에 평화가 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들 팔레스타인인 들에게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의 불을 끄지 않으시려 혼신의 힘을 다하시는 예수의 이름이 효력을 발생하게 하자. 인류 모두의 앞날에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 대접받고 살게 하고, 생명체들이기에 그들의 생명값을 누리게 하자. 인류 모두의 지혜로 말이다.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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