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교회가 오늘날의 희망-

 김 집사님,
 늘 마음에 있으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무슨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음에 있는 대로 몇 자 적으면 되는 걸 … 이제야 메일 보냅니다.
지난주간에 교역자들과 같이 설악산에 다녀왔습니다. 내년 목회 계획 세우느라고요. ‘교역자 컨퍼런스’란 이름을 붙여 시간을 냈지만 편한 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우리 사역을 점검하고 또 계획했습니다. 권금성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단풍잎 두 장 주웠습니다. 아직 깊은 단풍이 들지 않아서 그나마 빠알간 단풍잎이 눈에 띄어 지갑 속에 끼워 가져왔지요.
예수님이 사신 팔레스타인 땅은 사계절이 없지만, 만일 그분이 우리 나라에 사셨다면 아마도 가을을 가장 좋아하셨을 겁니다. 제가 가을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역 기록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분은 삶의 작은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분 얘기가 어른이나 아이 또는 남자나 여자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고 깊게 다가왔던 건 삶의 현장과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어느 시대 사람들에게나 여전히 감동을 주는 것은 그분 얘기에 매일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묵상이 있어서지요. 여인의 집안 살림이나 남자들의 바깥일, 아버지 요셉의 목수 일이나 어머니 마리아의 밀가루 반죽, 들의 꽃이나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 헌금 … 그분의 시선에 닿으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진리의 가르침으로 반짝였습니다.
김 집사님,
한동안 개정사학법과 전시작통권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더니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온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시간대 별 뉴스의 변화에 뭐 그리 민감할 게 있겠습니까만, 괜히 컴퓨터를 켤 때마다 뉴스를 클릭하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우리 나라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심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네요. 얼마 전에 미국 시카고에 집회하러 다녀왔는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도 우리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조용하던지요. 시카고 도심도 서울에 비하면 시골 같았습니다.
최근 우리 나라의 여러 상황 속에서 교회도 많이 바빴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발생하는 문제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성명서도 발표하고 항의도 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회 형태를 빌린 데모도 했고요.
집사님,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가 오늘날의 희망’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교회가 희망이라는 명제가 적어도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교회가 희망에 대해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는 모습이 희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가 다른 사람에게 그 희망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대 담론을 얘기하다보면 의견이 갈리고 싸우기도 하더라고요. 이론과 논리를 펴다보면 이상하게도 자꾸만 갈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거대 담론에서 궁극적으로 하자고 하는 것, 이론과 논리에서 그렇게 돼야 한다고 하는 것을 아주 작은 것부터 그냥 하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얼마 전에 집사람한테 이번 가을엔 단풍 한번 보러 가자고 했더니,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면서 말로만 그러냐고 하더군요. ‘아직 단풍이 깊이 들지 않았어’ 하며 설악산에서 가져온 단풍나무 잎 두 장을 건넸더니, ‘예쁘네’ 하며 좋아했습니다. 단풍 보러 가자고 한 말을 이걸로 때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정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에 성도님들 드리려고 남산에 올라가서 집사람과 함께 낙엽 몇 백장을 주워온 적이 있었는데 멋쩍어서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올 가을엔 그때 주워놓은 것에 ‘올 낙엽’을 더해서 성도님들에게 나눠드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필요하면 데모도 하고 성명서도 내야겠지만, 삶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며 거기에서 외로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가을 낙엽 하나 건네며 가을의 정취를 전하면 좋겠습니다.
집사님,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평안하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형은 목사 드림.
 ※ 이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