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가 내린다. 벚꽃이 무리지어 피는 줄도 모르고 보름 가까이 폐렴과 식도염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황사도 멈칫하고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좋았고 꽃이 춤추던 날들, 진해, 윤중로, 남도… 곳곳에서 벚꽃 축제가 열리던 금년 봄에 나는 두 개의 링거주사를 팔에 꽂고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끼니 때 마다 한 움큼씩이나 되는 약을 먹어야 했다.

 은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아 슬그머니 고독 하고, 억울하고, 소외감도 느끼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꿈속에서까지 정년병(病)을 앓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를 병원 응급실까지 태워다 준 교무처 직원에게 나의 입원 사실을 일체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비밀은 없는 법, 수많은 분들이 문병을 다녀갔다. 아프면서도 그분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나도 모르게 밀려 왔던 정년병의 일부를 털어낼 수가 있었다.

 내가 기거하는 아파트 입구에 줄 세워 심어놓은 수녀 같은 목년 꽃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결하고, 지조 높은 조선 여인 같은 목련, 학처럼 목이 긴 목련은 떨어질 때 너무도 비참하다. 어쩌면 저렇게 추한 모습으로 떨어져 쌓인단 말인가?

 꽃비가 내린다. 그것들은 다시 꽃눈이 되어 날아간다. 삶의 잔해들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영원한 권력자도 없고 영원한 부자도 없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이 꽃잎처럼 떨어질 것이다. 아니 당신 자신도 바람에 휘몰아 사라지는 저 꽃잎이 될 것이다. 역사는 당신의 탐욕을 심판 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에 친구와 선후배와 스승까지도 배반한 추악한 삶을 낱낱이 폭로하고 심판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배신자 유다보다도 더 싸게 팔아버린 그 위선을 심판할 것이다.

 매주일 강단에서 저지른 성의 없는 거짓 증언을 심판 하실 것이다. 당신은 세상의 장사꾼보다도 더 악독한 예수를 파는 장사꾼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한다. 국회위원을 포함한 공직자는 일백만원 이상의 벌금형만 받아도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타락한 교회사회는 엄청난 돈을 교회정치 자금으로 쓰고도 감독이나 총회장, 연합회장의 자리에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성직을 매매하고, 교회 이동이나 담임자 교체에 뇌물이 오고간다. 가짜, 엉터리 박사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더욱이 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자신들은 교회를 세습하고도 김정일 가의 세습을 비판한다. 진정으로 당신들은 하나님을 믿기나 하는 사람들이요?

 당신들 때문에 다수의 신실한 목자들이 한꺼번에 매도당하고 있다. 죽고 난 다음에 천국 갈 생각 말고 지금 여기서부터 그리스도를 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히브리어의 의미로 예수의 구원을 체험하고 그 감격으로 예수를 본받아 산다는 뜻이다.

 봄은 꽃샘추위를 하며 어렵게 와서 너무나도 쉽게 간다. 봄은 오는 속도의 이배속으로 사라진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폴 틸리히(P. Tillich)의 말처럼 오직 영원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이 시간을 영원한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영원한 현재를 사는 것이다. 목숨 걸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봉사하는 것이다. 겸손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사신 삶을 진정으로 본받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교리, 종교, 교파, 도그마를 초월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확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흐르는 시간(chronos)을 의미 있는 시간(kairos)으로 바꾸는 삶이 천국이다. 그리스도는 “이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작은 자가 누구인가? 힘없는 자다. 가난하고 눌린 사람, 소외된 민중이다.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연구실 옆 주차장 길 돌 틈 사이에서 진달래가 어느새 시들어가고 진홍 빛 영산홍이 화사하게 피고 있다. 삼십년 전에는 이곳이 시골이라 뻐꾹새도 울고 소쩍새도 울었는데 지금은 도시화로 새의 노래도, 산새의 울음도 멈췄다.

 오늘 오후에는 연구동 앞 잔디밭에 여기저기 피어난 제비꽃무리를 보았다. 연보라 청초한 저 작은 꽃들이 조금 있다가 무성한 잔디 속으로, 속절없는 세월 속으로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올 봄에도 꽃비가 내린다. 꽃잎이 눈처럼 날아간다. 인생이 그 꽃의 연무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도 이같이 시간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영원한 지금을 살자.
 
안춘근 교수(나사렛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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