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2,091건) 제목보기제목+내용
[사설] 정교분리와 기독교의 양심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을 정교분리로 해석한 로마식 기독교의 교리인데 기독교인들이 저마다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정치적 행동으로 20세기에 독일과 인도의 두 형식이 등장했는데 히틀러에게 저항했던 디트리히 본 회
논설위원   2019-06-12
[사설] 아사셀 양을 바라바로 착각
며칠 전 모 일간지에 은퇴 신학교수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대속자 그리스도는 예수 이전의 구시대의 유물”이라 하여 유대 이스라엘의 전승을 예수께서 친히 선택한 대속론인데 이를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 하였고, “예수는 로마 압제
논설위원   2019-06-12
[사설] 노동권 시비가 교회로 몰려온다
담임과 부교역자 문제 시비는 한국에만 잠시 있는 일이다. 유럽, 중남미, 미국 등의 교회에는 이따위 시비 없다. 가서 경험해 보라. 다만 한국적 현실일 뿐이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10년 쯤 뒤부터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정·치유력을
논설위원   2019-06-12
[사설] 세례교인비
지난 주 모 교단 신문에 교단 산하 신자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보도 내용 끝에 혹시, 각 지교회 세례교인비(일종의 주민세) 납부 문제로 신자 숫자를 줄여서 보고했을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설명까지 있었다.이 기사를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세례
논설위원   2019-05-29
[사설] 공산주의, 맹목적 증오는 안 된다
시대가 달라져버렸다. 전에는 휴전선이 막혀 있었으나 이제는 열렸다. 조금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현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일상화시켜버린 이상 현 정권 이전의 방법으로 좌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대접할 수 없다.악성 사회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을 광
논설위원   2019-05-29
[사설] 피할 수 없는 위기다
관념화 된 “믿음 타령”은 이미 미신이 다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예수 말씀하시기를 “나무는 그 열매로”라 하셨으니 새겨듣고 믿음의 길을 온 몸으로 살아가야 했다. 행위 열매 없는 믿음이라는 고백으로 자기 신앙을 바르게 붙잡지 못했다. “개독교” 이름으
논설위원   2019-05-29
[사설] 한국교회와 북한 문제
대한민국의 역사, 거슬러서 조선왕조, 그 이전까지 생각해 볼 때 남북 간의 문제는 상당한 깊이 있는 의미가 있다. 지정학적 구조만 아니다. 온 세계인이 이상사회를 향해 줄달음치는 20세기 중턱부터 80여년 가까이 분단 세월, 남북한의 관계는 쉽게 해결
논설위원   2019-05-14
[사설] 신자의 마지막 덕목은 겸손이다
어설프게 설치다가 겸손하지 못한 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 믿음에 대한 표현을 똑바르게 하지 못해서 신앙을 제대로 못 배운 자가 되기도 한다.요즘 교회 주변에 송사가 많고, 특히 서울교회나 사랑의교회 사태도 사실은 양측 당사자들이 서로 잘났다고 설치고,
논설위원   2019-05-14
[사설] 신자가 예수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교리적 맹점이 있다. “믿습니다”의 확대가 마치 예수의 경지에 도달이라도 된 듯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또 “믿고 천당”이라는 전도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순간 기적처럼 천당과 지옥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 양 오만스러운 신자의 모습에
논설위원   2019-05-14
[사설] 여의도에도 선교사 보내자
한국교회가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처럼 전문 정치인들을 양성시키고, 연수도 시키고, 유학도 시키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양심에 불심지를 꽂아주는 등 여의도 관리를 했으면 한다. 현재 한국의 의회정치 역량을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북한과 선의의
논설위원   2019-04-25
[사설] 교회가 답이다
예수께서는 그 주변에 지체부자유한 이들을 늘 가까이하시는 유랑전도자이셨다. 어느 날 앗시시의 프란시스처럼, 리용의 피터 왈도처럼 그렇게 예수는 거리를 거니시다가 배고프고 병든 자, 특히 눈멀고 지체까지 부자유한 사람에게는 그 모습들이 안타까워서 함께
논설위원   2019-04-25
[사설] 교회에서 예수 부활한다
부활절이 지난 후 예수님이 그리운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가 만나고 싶다. 그때 십자가 지실 때 얼마나 많이 아프셨는가, 그때 홀로 항변이나 변명 없이 골고다 그 언덕 산까마귀들도 차마 서러워서 찢기고 상하신 주님 가까이 다가오지 못할 때 그때 주여 얼
논설위원   2019-04-25
[사설] “민족” 아니고 “정치체제” 통일이어야
주 예수께서 벨리알과 함께할 수 없다지 않은가. 교회가 어떻게 사단과 동업할 수 있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은 “교묘한 유혹” 앞에서 자칫 혼돈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한민족이라는 틀은 있지만 인류 발전사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함께 살
논설위원   2019-04-17
[사설] 부활이냐, 십자가 동행했구나!
십자가 동의하고 예수와 동행해 십자가 죽음을 지켜낸 자들의 선물이 부활이다. 죽은 뒤에 간다는 세계 이전에 “지금”, 오늘이다. 바로 오늘의 영생이 중요하다. 오늘 영생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의 “내일”은 그 가치를 알 수가 없다. “나는 부활이요
논설위원   2019-04-17
[사설] 3.1찬가보다 제국 멸망 반성부터
‘3.1운동’ 100주년 찬가가 그럴듯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 멸망의 추악한 민족사의 반성도 함께 해야 한다. 대한제국은 조선조 중기인 임진왜란 때부터 멍들고, 정묘·병자호란 때에 이르러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왕조사의 곤고함이 이어져
논설위원   2019-04-17
[사설] 좌파와 우파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매우 공격적인 단어지만 현재 한국사회만 아니라 신학 분야에서도 이따금 사용되는 단어이다. 신학 분야에서는 좌파를 자유신학 또는 자유주의신학이라 부르고, 우파를 보수신학이라 부른다. 보수신학에는 20세기 초에 있었던 근본주의를 떠
라은성   2019-04-17
[사설] 4.3 보궐선거 살펴보기
4월 3일 경상남도에서 2명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다. 특히 창원 쪽 선거양상을 바라보면서 웃느라고 배꼽이 빠질 뻔 했다. 시쳇말로 여야 모두 멍청하고 정치인으로의 소명이 부족함을 느꼈다. 현 집권 여당은 초반에 여당후보를 국회의원 5석을 가진 아
논설위원   2019-04-10
[사설] 요즘 한국교회, 고난은 싫단다!
찬송가 곡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 성향을 알 수 있다. 60년대 전후로는 “대각성기 무렵” 작사 작곡의 찬송가들이 매우 친숙하게 애송되었었다. 그러던 한국교회가 1973,1974년 빌리 그레이엄과 엑스포로 74 이후로는 이상야릇한 곡과
논설위원   2019-04-10
[사설] “영적 치매”를 두려워 한다
지난 3.1운동 전후로 한 변칙 행사들을 보라. 이미 3.1운동이나 독립군 활동 등에 “색깔이 칠해졌다”, 이를 어찌 하는가? 변형 교과서, 변칙 교과서가 장차 대한민국 사람을 기형으로 만들어낼 날이 멀지 않다. 자유가 뭔지, 인간 개개인의 표현의 값
논설위원   2019-04-10
[사설] 죽음이 먼저다, 죽어야 산다
요한복음 12장을 펴면 마리아라 하는 여인이 옥합을 깨서 주 예수의 몸에 붓는다.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의 발등을 쏟아지는 눈물로 씻기도 하며, 울기도 하다가 또 웃는다. 곁에서 지켜보는 가룟 유다가, 그거 2백 데나리온짜리다. 그걸 팔아 가난한 자를
논설위원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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