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 예수의 피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누는 삶이다. 교회는 이 사랑의 판을 벌이는 곳이다.

우리 문화는 판의 문화다. 씨름판, 굿판, 노름판, 정치판. 판을 짜고, 판을 깨고. 판의 구체적인 뜻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노름판, 씨름판, 굿판 등에서와 같은 의미다. 노름이나 씨름이나 굿이 벌어지는 장소를 뜻한다.

둘째로 `씨름 한 판', `바둑 한 판'과 같은 의미다. 이 때 한 판, 두 판은 게임의 승패가 났을 때 승자 중심의 새 판을 다시 짜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 정치판은 바둑의 한 판처럼 승패의 공정한 룰과 결과에 대한 신사적 승복이 없다. 게임이 불리하면 판을 엎어 버린다. 판 자체를 깨 버린다. 이런 것은 깽판이다. 역사의 일치성과 보편성과 연속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판에는 룰과 규칙이 있다. 그래서 재미가 있는 것이다. 재미가 곧 신바람을 일으킨다. 룰을 깨고 판을 엎어버리는 불한당들이 판을 치면 그 판은 개판이 된다. 선거에 의해 새 정치판이 짜여지면 진편은 다시 한 판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셋째는 판놀음, 판 굿의 의미다. 판놀음이나 판 굿은 조선조 말 전문 유랑인 집단들이 벌이던 놀이다. 일종의 프로다. 전문적인 연예인들로 조직되어 유랑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놀이를 벌이고 구경꾼들로부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때의 `판'은 전문프로를 뜻한다.

정치판도 아마추어가 판을 치고 생떼거지나 쓰는 유치한 깽판을 거두고 훈련된 정치프로들이 정해진 룰을 따라 펼치는 신명나는 정치판을 새로 짜자.

노사문제도 마찬가지다. 전문 프로들에 의해 공정한 룰을 따라 판을 짜고 판을 열어 협상하고 타협하여 신명나는 놀이판을 열어가야 한다. 판세가 불리하다고 판을 깨서는 안 된다.

우리 정치판의 비극은 전 정권의 정치판을 계승하여 새 판을 짜는 것이 아니라 전 정권과의 단절을 통해 새 판 짜기에 골몰하다보니 신구 정치판이 서로의 판을 깨느라 날 새고 있다. 더군다나 전직 대통령께서 몸을 던져 정치판에 승부수를 던지자 정치판이 요동치며 이전투구의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 정치판에다 기독교를 끌어들여 뭇매를 치는 이상한 판세로 돌아가고 있다. 마치 기독교가 부엉이 바위 위에서 그 분의 등을 떠밀고 부처의 자비한 가슴이 그 분을 쓸어 품은 것처럼 판이 돌아가고 있다. 이 반기독교 판세가 온라인의 사이버 대륙은 물론 오프라인의 교회 문턱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판이 이 지경이 된 데는 교회의 책임도 크다. 먼저 회개하면서 교회 본연의 임무인 사랑의 새 판을 계속해서 짜야 한다.

일본의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 정치판이 요동칠 때 인내로써 새 정치판을 열었던 정치판의 프로였다. 그의 인내심의 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예화가 새삼 주목을 받는다. 새가 안 울 때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떤 사람은 새를 죽이자고 했고 어떤 사람은 새로 하여금 울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도쿠가와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반기독교 정서가 극성을 부릴 때 교회는 더욱 자숙하고 인내하며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독교 역사의 치명적 병폐는 너무 공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새를 죽이거나 새를 억지로 울게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단세포적 반응을 자제하고 대규모 정치적 집회를 열지도 말고 참석하지도 말자. 조용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누는 순결한 사랑의 새 판 짜기만을 계속하자. 고환을 거세당하는 천형을 이겨내며 불후의 명작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처럼 거룩하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라고 했다. 부엉이 바위 아래 태산이 솟아날까, 깃털이 날아오를까.
 
이철재 목사(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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