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테이큰'(TAKEN)이라는 영화를 봤다. 피에르 모렐이 만들어 2008년에 개봉된 영화다. 전직 특수요원인 브라이언(리암 니슨 분)의 딸 킴(매기 그레이스 분)이 파리에 갔다가 국제적인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인신매매단을 추적해서 결국 딸을 구해낸다. 특수요원의 작전 기술과 액션의 긴박감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통쾌하고 통속적인 스토리다. 딸에 대한 브라이언의 사랑이 유달리 깊다. 딸 킴은 브라이언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 사람은 바로 이것 때문에 울고 웃는다. 때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애간장을 태우기도 한다. 반대로 삶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며 행복에 겨워 기뻐하기도 한다.

핵심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대개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가장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사회적 지위나 명예가 가장 소중한 사람도 있고 벌어놓은 돈이 그런 사람도 있다. 자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비전이기도 하고. 삶의 성취와 성공은 핵심 가치를 아름답게 이루어가는 데 있다. 반대로 그 소중한 것을 빼앗길 때 삶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대학에 다닐 때 당시 내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던 걸 `빼앗긴'(taken) 경험이 있다. 부모님이 신앙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 신학공부를 결심했던 터라, 아들에 대한 부모님의 섭섭함이 깊으셨다. 그분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던 게 대학에 들어간 첫 해에 합격했던 군목 시험 때문이었다. 대학 마지막 학년 때 어떤 사건과 연관하여 장교후보생 자격이 박탈되고 사병으로 군에 징집되었다. 나로서는 아주 소중한 것을 `빼앗긴' 것이었다. 한 젊은이의 인생 여정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가족 관계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명에 대한 확신까지 모든 것이 뒤엉켰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평생 도움이 될 큰 가르침을 얻었다. 삶의 여정과 계획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던 그 사건의 정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다른 문제다. 통전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내가 깨닫고 그 이후의 내 삶에 큰 성숙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빼앗김과 잃어버림을 겪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쉽지 않다. 상실의 슬픔과 아픔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민족과 국가 단위로 볼 때도 그렇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험이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에 얼마나 깊게 패인 상처를 남겼는가. 그러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상실의 경험에서 배운다. 외부의 공격으로 빼앗기든 자기 잘못으로 잃어버리든 상실에서 가장 크게 배운다. 소중한 것을 상실했을 땐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의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보자.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든 `10년간 쌓아온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고 말하든 상실했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불편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두 입장이 서로 반대다. 둘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상황에서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상실의 자의식을 상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잘못되었다. 이게 문제다. 상실의 상황을 남을 공격하는 빌미로 써먹으면 배우지 못한다. 상실의 아픔과 슬픔은 자기 내면을 돌아볼 때에야 미래를 여는 가르침이 된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쪽이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계속 잃어버릴 수 있다. 공든 탑 10년이라고 생각하는 쪽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공들여 쌓은 탑이 나머지까지 무너질 수 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긴 경험이 더 큰 미래를 여는 수업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살피면 말이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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