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은 동양 사상의 기본이 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근간을 이루는 오행의 순환을 가리키는 용어다. 목(木)은 화(火)를 낳고, 화(火)는 토(土)를 낳고, 토(土)는 금(金)을 낳고, 금(金)은 수(水)를 낳고, 수(水)는 목(木)을 낳는다는 것이 상생(相生)이며, 수(水)는 화(火)와 상극하고, 화(火)는 금(金)과 상극하고, 금(金)은 목(木)과 상극하고, 목(木)은 토(土)와 상극하고, 토(土)는 수(水)와 상극한다는 것이 상극이다. 동양 사상에서 음양이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기본 속성이라면, 오행은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생성과 변화의 기본 원리를 말한다. 상생(相生)은 서로 다른 것을 낳는 관계를 말하고, 상극(相剋)은 억제, 저지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최대의 화두(話頭)는 단연 ‘상생’이다. ‘화두’라고 하는 말이 불교에서 사용되는 원래의 뜻과는 별개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처음의 주제, 화제가 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issue)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쓰이듯이 우리의 정치 환경에서 쓰이는 ‘상생’이란 단어의 용례를 살펴보면 음양오행에서 뜻하는 ‘상생’의 본질적인 의미보다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일반적인 정의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기업인이 기업 운영의 정신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 ‘상조공생(相助共生)’의 준말로 사용되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목사의 입장이어서 그런지 너도나도 ‘상생(相生)’이란 말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왠지 불편하다. 기독교 아닌 특정 종교가 줄기차게 주장 해 오던 ‘상생’이란 말이 사용 되어서 그들이 너무 좋아 할 것을 생각하니 괜히 기분 나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한 사람의 주장으로 모든 국민이 희망적인 기쁨을 누리도록 해 주고 있는 ‘상생(相生)’이란 말을 고칠 수 없다면 나름대로 기독교적인 해석을 통해서 수용 해 보려 한다. 분노와 복수를 통한 역사의 진행이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상극(相剋)’의 진행이라면 용서와 화해로 역사를 진행 시켜 나가는 것이 ‘상생(相生)’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 보는 것이 ‘십자가의 정신’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분노와 복수와 정죄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사랑과 용서와 화해에서 나오는가? 성경은 후자를 말하고 있다. 그 개념이 십자가를 통해 강력히 표현되었던 것이다. 십자가란 가장 잔혹한 사형 집행 제도에 쓰이는 틀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란 치욕의 상징이요 죄에 대한 철저한 응징의 표현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은 죄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졌을 때 부활을 통한 거듭남의 은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비판과 정죄를 통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선택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러한 결정의 동기는 바로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다. 다시 말해 사랑과 용서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감당함으로 거듭남, 부활의 역사가 영광스럽게 펼쳐질 수 있었고, 그 사건이 온 인류의 죄 문제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요 대안이 되었던 것이다. 남여삼열 / 서울교회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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