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유대교의 부패했던 종교적 현실과 맞서 싸우며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온갖 위선적인 것들을 철저히 거부하였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당시 타락한 예배행위로 더럽혀진 예루살렘성전을 정화했다는 기사가 마가복음 11장 15∼18절에 나온다. 당시 종교지도자라는 이들이 성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을 보고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라고 소리치며 분노하는 예수의 모습인 것이다. 교회개혁을, 예배개혁을 요구하는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사건이 있은 후 약 1500년이 지난, 지금으로부터 487년 전인, 1517년 10월31일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비텐베르그 성당 게시판에 ‘95개의 논제’(Die 95 Thesen)를 ‘면죄부의 효력에 대한 해명을 위하여’(Zur Klarung der Kraft der Ablasse)라는 부제와 함께 부쳤다.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러한 진리를 향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루터는 예수의 참 모습과 복음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위주의, 교권의 남용 등을 폭로하며, 부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루터의 외침은 마침내 중세의 암흑을 깨뜨리고 복음의 회복과 인간성 회복을 향한 역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으며, 우리는 이것을 종교개혁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과 교회의 신앙현실은 어떠한가? 생활과 신앙이 따로 노는 잘못된 신앙행태, 기복신앙의 자리로 전락해 가는 교회, 업적주의와 물량주의로 흘러버린 선교, 교회내의 가부장적 성차별문화 등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은 예수 당시 유대지방의 종교적 상황과 루터 당시 기독교 상황과 고대와 중세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 빗나간 신앙의 모습이라는 관점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아래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맡겨진 중대한 과제가 있다면 만연된 교회의 비신앙적 관행과 반복음적 신앙 행태를 추방하기 위하여,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자기반성과 함께 교회의 원래 모습을 회복 시켜가는 신앙적 각성과 노력일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에 예수의 예루살렘성전 숙청 사건이나 루터의 종교개혁은 항상 현재적인 것으로써 특히 종교개혁의 정신은 우리 기독교인의 정신을 정화시킴은 물론 오늘 우리로 하여금 우리시대의 종교개혁을 위한 비전을 가슴에 품도록 해주며, 이러한 우리의 비전이 성서적인 요청이자 동시에 교회사적 요청임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는 시대적 변화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항상 개혁되는(sed semper reformanda) 실체로서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끊임없이 가야만 할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의 현실 안주적 의식구조로부터 과감히 탈출하며, 소외된 자들의 힘이 되어 주며, 더 나아가 과학, 예술, 경제, 사회 등 모든 세상영역과 대화하며 세상과 이웃을 섬길 때에 비로소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교회의 모습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권득칠 목사 / 루터대학교 교수, 천안루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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