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고엽제피해자전우회’라는 곳에서 도움 요청이 있어서 허락을 했더니, 정성껏 만든 물건을 보내면서 시집을 한 권 같이 보내 주었다. ‘역사에 하나 뿐인 진중시집’이라 소개를 붙인 그 책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사이에서〉라는 제목이었다. 생사의 길을 넘나들던 파병 용사들의 고민과 결연한 의지, 그러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읽으며 정녕 지금 이 순간에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서” 치열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사이’에서라는 말! 이 말이 내 눈앞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던 날이 있었다. 올해 칠순 잔치를 하셨던 성도 한 분이 논에 약을 뿌리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면서 농수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급한 전갈을 받고 병원 응급실로 뛰어 갔을 때, 그 분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의식이 돌아오고 붓기가 빠지면서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4시간이 가까운 수술시간 동안 자녀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을 위로하고, 수술이 끝날 시점에 회복실 쪽으로 내려갔다. 보호자 대기실 주변을 서성이는데, 웬 수술 환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수술 과정을 일러주는 모니터는 네 다섯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순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며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저 앞 다른 수술실에서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급히 들락거리더니, 한 여자가 주저앉아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그의 아버지가 가망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시술을 하자고 해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는데 그대로 돌아가셨단다. 그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안타까운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계단을 걸어 내려오다가 층계 안내판에 눈이 머물렀다. ‘▼3 5▲’ 아래는 3층인데, 위는 5층이란다. 병원에서 4층 안내판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막 한 생명이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상등 아래 훤히 밝혀진 그 숫자를 보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3층과 5층 ‘사이’란 말이네.” 입원실이 모두 5층에 있는 수술실 위층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수술이 잘 되어서 회복된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고 수술이 잘못되면, 그래서 영영 다시 깨어날 수 없으면 아래층 영안실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얼른 다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을 옮기고 말았다. 입원실에 올라 온 성도의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자녀들과 작별을 하고 길을 나서는데도, 내 머리 속에서는 3층과 5층 사이에 서있던 짧은 시간, 죽는 것과 사는 것의 ‘사이’에 서있던 나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났다. ‘사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과 관계를 포함하는 언어이다. 늘 그 ‘사이’에서 내가 살아있고, 생사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을 만났으며, 내가 사는 땅 ‘안’에 또 ‘밖’에서 여전히 수많은 사이를 지나며 또 살고 있다는 것은 감사요 기쁨이었다. 오늘 ‘사이’를 살며 엉겁결에 올라 선 위층이 아니라, 그 ‘사이’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충만한 힘으로 살아가는 생명 ‘사이’에 언제나 서 있기를 소원한다.이종덕 목사 / 삼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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