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출범에 대해 ‘산업화 세력’에 대한 ‘민주화 세력’의 승리로 표현한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 군사독재, 3김 시절까지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안보 논리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출이 상당히 제약 받은 것이 사실이다. ‘산업화 세력’은 비약적인 국가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튼튼한 안보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성장 일변도 과정에서 정경유착, 권언유착 심지어 정교유착은 자유시장경제를 위배하였고, 민주주의를 제약하였다. ‘산업화 세력’에 대항해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요구해 온 ‘민주화 세력’은 국가보안법 등의 자의적 사용을 통해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했다. 그러나 인터넷 발달, 월드컵을 통한 국민 응집력 결집,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재조명,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식 성숙 등은 정치개혁을 기치로 든 지지 기반이 없던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바야흐로 ‘민주화 세력’ 집권 1기라 할 수 있다. 분배와 함께 가는 경제, 동등한 한미관계, 권력 분산, 부패 구조의 개선 등 개혁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개혁의 대상이 된 ‘산업화 세력’의 소외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위기감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 저항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는 2030과 ‘산업화 세력’과 함께 해온 5060과의 세대 갈등이 심화 되고 있다. 필자는 현재 사회적 갈등을 보수, 진보의 이념 갈등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되면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양 세력은 각자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 다르고, 교육 받아온 학습 내용과 방식의 차이에서 역사와 시대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일고 있는 갈등이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역사 변화의 시점에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 갈등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해 발전적으로 승화 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필자를 포함한 인류 구원의 역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종교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지도자들과의 치열한 갈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지하며 따르는 백성들이 정치권력과 경제적 안정에만 집착하는 것을 나무라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을 호소하신다. 예수님의 관심은 영혼을 구원하고, 소외된 자를 돌아보는 하나님 나라에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 가운데 있는 양 세력간의 갈등과 세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필자는 형식적인 평화를 만드는데 해답이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끊임없는 전진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진오 국장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책기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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