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당면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정확히 문제를 지적하자면 필자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갈등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하겠다고 덤벼드는 양측의 전투적인 태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에 개인적으로 또는 이해관계를 서로 달리 하는 집단 사이에 다양한 갈등이 늘 존재 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념적 갈등 역시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해결 되어 지거나 뿌리 뽑힐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갈등’이라는 단어에 ‘관리’라고 하는 단어를 결합시켜서 쓰고 있다. 그 의미는 ‘갈등’이 더 이상 부끄럽고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어느 개인 또는 집단도 다 가지고 있는 필수적인 단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갈등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대하겠다는 표현이다. 위기가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로 사용되듯이 ‘갈등’ 역시 ‘기회’로 이용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갈등을 대하여야 한다.  그러나 ‘관리’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배우고 훈련해야 될 필요가 있다. 갈등에 대한 관리 능력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필자가 종종 주위 목회자들에게 갈등 해결을 위해서 공부하고 훈련받아야 된다고 말하면 그렇게 한다고 갈등이 과연 해결되겠느냐고 반문하며 하나님께서 ‘녹여’주셔야만 해결된다고 말한다. 한때는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 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한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야 믿음이 생기니까 우리는 그저 ‘예수천당, 불신지옥’만 외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목회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가 ‘전도’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야 가능한 전도라 할지라도 우리가 준비되고 훈련되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갈등’역시 마찬가지이다. 갈등 해결을 위한 교육과 훈련은 절대적이다. 훈련은 어릴수록 효과적이고 작은 문제부터 다루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우리에게 버거운 것은 그 문제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갈등을 다루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일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왔고, 권위적으로 왜곡된 유교적 전통으로 인하여 갈등 해결과 협상에 관한 교육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자란 기성세대들이 갈등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다루어 낼 능력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 교회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 교회는 갈등을 권위적이고 일방적으로 위에서부터 다루는 문화를 지양하고 성경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사회로부터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내용이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갈등해결의 방식은 결코 일방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직접 낮아진 모습으로 오셨다. 평화의 왕으로 섬김의 종으로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그 대가로 지불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사람들의 평화를 이루셨다. 교회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며 성경적인 갈등해결의 원리와 방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훈련해야한다. 크고 거창한 문제보다 사소하고 작은 문제부터 다루어 나가야한다. 라틴속담에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있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 못한다고….여삼열 목사 / 한국피스메이커 상임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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