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신앙 신앙을 가지고 성공했다는 말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이 된다. 산업사회 이후 부터 신앙인들도 사업적인 용어를 사용하다보니 성공이란 말을 많이 쓰게 된 것이 아닐까? 교회의 부패는 사업적인 면으로 보는데서 생기게 된 것 이라고 생각된다. 시청에서 면허증 하나 걸어놓고 누구나 개업할 수 있는 식으로 장사꾼이 장사하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으려 하니까 교회와 교회간에도 알력이 생기고 중상모략이 나오고 성직자의 존경도가 떨어지면서 경쟁사회속에서 성공이란 말을 신앙안에서도 쉽게 쓰게 되는 것 같다.  신앙은 아름다워야 한다. 말이 고와야 하고 행동이 이뻐야 한다. 덕이니 겸손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다움들이다. 성공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다. 은혜란 말이 헬라원어로 `카리스'라고 한다. 카리스란 말은 지극히 아름다울 때 쓰는 말이다. 필자가 지난 12월 5일 1주일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워싱톤 국제공항을 내릴 때 전부가 흰눈으로 덮혀 있었다.  한폭의 그림처럼 보여졌다. 헬라인들이 그런 장면을 보면서 `카리스'라고 한다고 했다. 어제의 지저분한 것이 흰눈에 덮혔을 때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은혜받는 사람은 아름다워 보인다. 말이 아름답고 생각이 아름답고 행동도 아름다워 보인다. 범죄한 인간은 그 품성 자체가 죄성으로 꽉 들어차 있어 더러워진 것이다. 언어도 부정적이요, 불평, 원망, 시기, 질투, 미움으로 꽉 들어찬 마음은 더러운 것 뿐이다. 그러나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십자가의 흐르는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 순간 옛 사람, 옛 구습은 없어지고 `보라 새 사람이 되었도다' 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순간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신앙의 아름다움이란 보통때는 잘 모른다. 그러나 고난과 연단을 겪으면서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이다. 물이 낭떠러지를 만나야 폭포가 되어 물의 위력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금은불속에 집어 넣어야 순금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앙도 고난이나 환란속에서도 불의와 타협치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킬 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성경속에 다니엘은 아름다운 신앙인이었다. 온갖 불같은 시험과 모함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울사도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고난과 핍박, 동족의 모해, 죽음의 고비들을 맞으면서도 그렇게 태연하게, 여유있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같은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한국교회가 지녀야 될 것이며 그래야 더 많은 생명을 구원케 될 것이다. 왜 오늘 한국교회가 비판을 받는가. 성공위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세상 어느곳보다 사랑을 더 외치면서도 남이야 죽던 말던 나만 잘되면 된다는 교회이기주의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지탄을 받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중심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성도들의 신앙인격을 다듬어주며 양육시켜 성숙한 크리스찬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숫자 관념에만 치중하다보니 비즈니스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월드컵 축구때 한·미간에 축구경기가 시작되었는데 하나님께 서로 자기 편을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는 미국이 하나님편이 되게 하소서, 한국 축구인도 하나님 편이 되게 해달라 기도하는 것이 아름다움 아닌가?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젠 우리들의 신앙이 성공관념에서 벗어나서 아름다운 관계로 바뀌어 나가야 할 것이며 목회에서 성공했다란 말이 아닌 참으로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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