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면 어김없이 내걸리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적지 않은 이들은 “난 예수쟁이도 아닌데 무슨 성탄절?”이라고 하는 말도 어느새 많이 누그러졌다. 그만큼 타종교의 절기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정작 `예수쟁이'인 신자들의 성탄절 맞이는 어떻게 되어갈까? 칸타타를 준비하고, 성탄절 이브의 행사를 준비하는 등 분주하지만 그 마음 가운데 어떤 소망과 기쁨이 있는 것일까? `성탄절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집사(성동구 모 교회)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강 집사(동대문구 모 교회)는 “우리 구주가 나신 날이며, 그런 분이 우리의 구원이 되셨기에,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태어나신 날. 하늘의 생명을 가지고 땅 위에 태어나신 날이다. 그리고 그 예수는 땅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시고 모든 인류를 위해 돌아가신 분임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인지하고 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는 이 사실이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으로 그리고 `평화'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하심을 말해주는 근거가 된다. “성탄절이 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그 사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며, 나에게 어떻게 그 사실이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까”. 적지 않는 크리스찬들은 과연 그 해답을 갖고 있을까? `임마누엘'이라는 사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그 임마누엘의 역사가 시작되는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성탄절'이다. 많은 시간동안 크리스찬들은 이 성탄절의 절기를 보내지만 참다운 그 의미를 모르고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 그 만남이 없어서 안타깝고 갈급한 것이 우리 기독인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끊임없이 복음은 외쳐지고, 복음의 현장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뤄질 수 있음에 희망을 걸어본다.  2002년의 성탄절, 기꺼이 그 많고 많은 멀쩡한 집을 놔두고 하필이면 짐승들이 누워 자고 먹는 말 구유에 오신 구주를 우리는 `그리스도'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부를 줄은 알고 있지만 그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기꺼이 살아내려는 그 모습이 없는 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없는 까닭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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