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사역 잃은 반쪽짜리 설교 만연

 셋째,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그들의 회중을 크리스찬으로 간주한다. 로이드 존스(1998:146)는 이 점에 대해 “교회가 자신이 크리스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모두 크리스찬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설교자는 기존신자에게 하듯 설교할 것이고 거기에는 복음적 요소가 결여될 것이며, 따라서 회심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험하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오늘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회심함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사도행전식의 회심성장은 드물고, 기존신자가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함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문제가 한국교회의 설교배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즉 설교환경에 있어 문화는 배제하고 교회만을 상정함으로, 다른 말로 하면 교회와 세상을 이분화하고 설교는 교회 내부에서 구원받은 무리들을 위한 거룩하고도 중대한 사역으로만 배치함으로 더 이상 회심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상의 한국교회 설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한국교회는 설교환경으로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의 중요성, 콘텍스트와 텍스트간의 해석학적 균형의 필요, 그리고 설교배치의 구조가 가져온 결과로서 설교본연의 목적인 회심사역을 잃어버리고 기존신자들을 양육하는 반쪽자리 설교의 문제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국교회는 이제 진지하게 현재의 설교환경과 설교배치에 대해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음에서는 한국교회가 설교환경과 설교배치를 재고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도록 한다.

 3. 한국교회의 설교환경과 설교배치를 위한 제안
 1) 교회와 문화의 상호작용 속에 설교를 배치해야
 이것은 첫 번째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다른 노력들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제안은 한국교회는 설교의 중요한 환경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설교에 있어 교회를 문화로부터 분리시키는 경향을 보여 왔다는 진단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경향은 앞서 살펴본 “문화에 대적하는 그리스도” 유형을 교회가 견지해 왔던 점과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즉 문화적 이슈는 문화권이 다른 지역에서 선교할 때나 고려되어질 문제지 동일문화권인 국내목회현장에서 다뤄야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교회는 80년대 한국사회가 전통문화와 새로운 문화 트렌즈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무렵 문화이슈들에 대해 전에 없는 관심을 보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바로 그 시기로부터 성장의 정체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문화변화의 속도를 교회가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지만 사실은 한국교회의 문화대응노력이 교회성장의 수단으로만(그 자체가 복음적 노력이 아니라) 그리고 교회 밖의 사회적 현상으로만(교회 안에도 여러 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문화현상에 대해 무지함으로) 제한되었다는 증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문화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의 부재와 그에 기초한 적절한 문화대응을 일궈내지 못함으로 교회의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록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설교를 바른 자리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재배치시켜야 한다. 그 자리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단순히 교회사역의 중심(in the center of church practices)만이 아니라, 교회와 문화 사이(in the interaction between church and culture)의 그 역동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배치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설교는 교회와 문화간의 상호작용(preaching as interaction between church and culture)으로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며, 설교자를 교회사역의 중심에 두었던 옛 구조의 주역(a main actor)이었던 설교자는 이 새로운 구조 속에서는 교회와 문화 사이에 서서 양자에 대한 충분한 감수성을 가지고 양자를 능동적으로 이어주는 중계자(中繼者 an inter-actor)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계자로서의 설교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가운데 서 있으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함께 섬기는 종(a servant)이다. 이 중계자는 또한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는 `문화간선교사(an inter-cultural missionary)'가 된다. 설교자가 일하는 교회와 문화 사이 또는 문화와 문화사이의 역동적이고 상호작용 하는 공간은 그러나 교회안과 밖의 경계가 되는 교회 문이나 담장 등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2) 회중을 각각의 하부문화를 가진 존재 또는 문화로 인식해야
 문화이해의 부재 하에 한국교회는 전달자(설교자)에 비중을 두고 있는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지향해왔다. 설교의 목적이 성경적 진리를 가지고 회중을 설득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설교는 자연히 설교자의 권위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었다. 설교자는 선포자요 그의 회중과의 관계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설교의 패러다임이 전달자 중심에서 수신자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는 이미 회당설교가 평신도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고(cf 정성구 1993:69; D Norrington 1996:4) 종교개혁이 평신도들의 자리를 영적 세계의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되돌아오게도 했지만(cf E Cameron 1991:312; C Dixon 2002:72-3) 그러나 약 30여 년 전 F Craddock, E Lowry 그리고 D Buttrick 등 미국의 설교학자들에 의해 다른 강조점을 가진 중요한 질문들이 나오기까지 설교는 여전히 설교자의 독무대였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설교자는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하는 기존의 그것이 아니라 “설교자는 누구에게 설교하는가?” “회중은 어떻게 설교를 듣는가?” 하는 새로운 것이었다.
 이러한 수신자중심의 패러다임은 그러나 회중이 적극적이고 공동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회중은 전통적으로 이해하듯 단순히 설교를 수동적으로 듣는 자들(listeners or hearers)이 아니고 설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설교자의 도움 없이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cf F Craddock 1971:62; T Long 1989:131; 김은주 1999:11-3; Pope-Levison & Levison 2000:3-8). 이런 점에서 필자는 청중(聽衆)보다는 회중(會衆)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더군다나 이 단어는 회중의 공동체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는 일단의 그 설교를 듣는 무리들을 전제한다. 그 무리들이 바로 회중이다. 믿음의 사람들, 교회, 믿음의 공동체인 것이다. 성경에서 신앙공동체에 근거하지 않은 개별적 크리스찬을 찾아볼 수 없듯이 회중(교회)으로부터 별리된 개별적 청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중은 공동체적(communal) 성격을 갖는다. 한국교회는 설교사역에 있어 이런 회중의 적극적이고 공동체적 성격을 보다 수용하고 회중의 문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회중이 다양한 문화환경 중 하나라는, 즉 설교환경이 된다는 인식을 아울러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래된 개념인 대화적 설교(dialogical preaching)는 설교의 두 파트너를 전제한다. 즉 성경해석자로서 복음을 대변하는 설교자와 세상을 대변하는 회중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 회중 개개인은 세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화는 세상의 그것과 다를 수 있고 그 각각이 하나의 독특한 문화(하부문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cf J Hopewell 1987; D Mosser 1991:9-10; M Marty 1991:15-18; L Tisdale 1992:5-9; S C Moon 2001:133). 회중(congregation)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문화(하부문화)를 가지며 회중 스스로가 곧 문화이기도 하다. 이는 H R Van Til(1977:26-29)이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이 문화의 창조물일 뿐 아니라 문화이전에 존재한 문화의 창작자요 문화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설교자는 기본적으로 세 개의 설교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텍스트, 세상, 그리고 회중(the culture of congregation or the congregation as a culture). 필자는 이 기본환경을 근거로 다음의 설교환경들이 설교자가 문화환경으로 인식해야 할 것들이라 생각되어 제안한다: 텍스트(복음/성경), 문화(콘텍스트/세상), 교회(회중/신앙공동체), 회중의 문화 그리고 설교자의 문화.
 이상에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설교상황과 설교배치를 새롭게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것은 그러나 한국교회가 전혀 새롭게, 다른 어떤 요소들에 의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 연구는 설교를 교회사역의 중심에 놓는 기존의 설교배치의 중요성과 유익성을 간과하지 않고 인정하고 또한 본 연구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콘텍스트의 문화뿐 아니라 텍스트의 문화가 가지는 중요성도 배제하지 않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1) 이전의 모델들이 간과했던 “다른 특징들과 성격들” 2) 이전에는 한국교회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다른 강조점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위의 논의에서 회중 또는 교회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자고 한 것처럼 교단을 각각을 구별하는 교리나 신조만 아니라 종교적 집단의 하나의 행동양식, 관습, 문화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한국교계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이고 상호존중적인 교단관계가 형성될 것이며 한국교회사의 뼈아픈 교단분열로부터 야기된 적대적이고 불편한 관계도 보다 개선될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현철 목사
·그리스도신학대학교대학원 교수
·성광교회 협동목사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