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도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하나님의 종은 반드시 소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 소명은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청각을 통해 하나님의 부름을 꼭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소리 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또 세우시고 인도할 때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본인의 확신이 더 중요하다. 소명을 받지 않고 남의 권유나 권고를 통해 신학교에 입학했을지라도 학생 시절에 소명을 받아야 하고 기회를 놓쳤다면 전도사가 되어서라도 소명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좀 더디기는 하지만 목사가 된 후에 소명을 받는 경우도 보았다. 이와 같이 소명은 중요하다. 또 이 소명이 개별적으로 그 개인의 사명으로 바뀔 때,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사역자, 목회자, 선교사라고 부른다. 소명을 거쳐 사명을 받자.
결국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야 했다. 어머니는 믿음이 깊으셨고 교회와 하나님 사역을 분별하셨기 때문에 내가 신학교에 입학하는 동의를 받아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내편이 되어 주셨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신앙은 가지고 있지만 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으셨다. 사범대학에 들어가서 교사가 되든지, 일반대학에 가서 공무원이 되든지 두 길 중 하나를 가라고 권면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큰 목표나 기대를 지나치게 갖고 있지 않았다. 비교적 소박하고 순수한 생각이었고, 큰 욕심을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가는 일만은 단호했고 용납이 안되셨다. 그것은 사회 분위기나 목사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판단으로는 이 길만은 막아야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계신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두 차례 세 차례 네 차례 무릎을 꿇고 신학교 입학을 허락해주도록 빌었지만 전혀 아버지의 뜻은 바뀌지 않았다. 어떤 때는 눈물로 호소해도 자리를 뜨시든지 외면하시고 오히려 내게 사정하다시피 권고하시는 것이었다. 정말 여간 끈기가 아니고는 아버지의 뜻을 돌이키고 그 상황을 버틴다고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나 사이에 신학교 문제가 복잡하게 되자 우리 아버지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회유하시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이웃집에 있는 내 선배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내가 신학교에 가려고 하는 것을 만류해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이었다. 선배인 이범관 선생은 나를 따로 만나서 신학교에 가려는 내 생각을 바꾸려고 철저히 계획을 세운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 번 만나 권유하므로 `자기 할 일을 다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을 보아 알 수가 있었다. 이 선생은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해서 신학교 가는 것을 말리려는 생각이었고, 또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신학교에 대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왜 귀신 신(神)자 학교를 가려고 하느냐”는 말까지 하면서 얼마나 성의 있게 나를 권면하는지 몰랐다. 삼일 동안을 들로 산으로 나를 끌고 다니면서 기어이 신학교 입학을 막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한편으로는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이웃집에 사는 남남이었지만 친척만큼이나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에 정말 나는 뿌리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많은 변호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오히려 내가 “나의 일에 더 깊이 관여해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 맞고 자기가 나이도 많은데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나중에는 섭섭해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는 “병돈이 일은 병돈이가 알아서 하라”고 짜증을 내면서 뿌리치듯 나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 사실이 아버지에게도 전해졌는지 우리 아버지 표정은 더 굳어진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달 이상 아버지에게 다시 신학교 가는 문제에 대해 의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25일 동안 밤마다 내가 정해놓은 자리에 올라가서 특별기도를 드렸다. 어떤 때는 산에서 교회로 내려와 철야기도를 했고, 한끼 두 끼 금식을 해가며 25일 동안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이 기도를 마치고 다시 아버지에게 신학교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걱정스러웠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히 꺼내게 되었다. 이번이 열 번째 아버지에게 사정하는 기회였다. 내가 눈물로 호소하자 우리 아버지는 내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아셨는지 몸을 뒤로 돌리시면서 “네 마음대로 해라”고 하시며 눈물을 닦으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허락이었다. 나는 방에 엎드려 감사하다고 하면서 울었고, 우리 아버지는 몸을 뒤로 돌이킨 채 눈물을 닦고 계셨다. 당신의 뜻을 꺾고 아들의 요구를 허락한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신학교의 입학 허락을 아버지에게 받아내므로 신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 때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셨던 우리 어머니와 나는 끌어안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우리 어머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든 나를 지원하고 돕겠다고 기꺼이 약속해 주셨다. 게다가 “신학교 등록금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잡으시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은평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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