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돈 목사 `회고록' 〈41〉나의 삶, 나의 목회

은평교회는 추대 받은 원로목사님이 계신 교회여서 더 조심스러운 목회로 출발하게 되었다. 원로목사님이신 김홍순 목사님은 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우리 교회 뿐 아니라 교단의 어른이시기도 하였다. 성격이 쾌활하고, 매우 적극적이며 사교적인 분이었다. 항상 바지에 주름이 반듯하게 잡혀 있었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도록 머리에도 기름을 바르며 외모를 가꾸어서 전혀 노인 같지 않았다. 또한 다변적인 성격이어서 아주 사교적인 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말도 적은데다가 성격도 나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원로 목사님과 함께 교회생활 한다는 것이 염려스러웠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원로 목사님의 사모님은 예일 학원 유치원 원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계셨다. 또한 교회에서는 여전도회 회장인 기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성품이 온화하고 자상한 편이었고 또 똑똑하시기 때문에 여자 성도들이 사모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대단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두 내외분이 교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비중이 컸었다.
그때에 나는 41세의 나이로 이분들을 모시고 담임목사 사역을 감당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좋은 분위기를 엮어 가는 특수한 인간관계가 아니고는 십중팔구 서로 불편해질 수 있는 조건이 너무 많았다. 나는 원로목사와의 원만한 관계를 지속하는데 성공하면 이 교회에서의 목회는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원로목사님을 잘 섬기려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나는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성격이어서 원로목사님을 섬기는데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원로목사님도 새 담임목사를 맞으면서 긴장하는 분위기였지만 3개월이 못 되어 아주 편안한 입장이 되었다.
나는 자주 부흥회를 나갔기 때문에 부교역자들이 있었지만 수요일 저녁예배 설교를 원로목사님께 맡겨 드렸고 오래된 성도들 중에 칠순잔치라든지 회갑잔치와 같은 목사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축하행사에는 원로목사님이 설교하게 하였고 내가 사회를 봄으로써 더 깊은 이해심이 쌓이기도 했다. 은평교회에 부임한 이듬해인 1976년부터 삼일절 기념예배와 광복절 기념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특수한 기념예배나 절기예배도 원로 목사님이 감당하게 되어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사이에 강단을 나누는 일도 어렵지 않게 자리잡아 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분위기를 돌아보면 교회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문제로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또한 불편함을 모르는 교회로 잘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 때에 느낀 일이지만 나는 원로 목사님을 잘 섬기려는 마음으로 노력하였고 원로목사님 역시 담임목사에게 힘들지 않도록 하겠다는 노력이 서로 좋은 조화를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편안해질 때 교회 부흥이나 교회 분위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회원들이나 부목사와 여전도사나 전체 성도들이 담임목사와 원로목사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교회 일에만 열중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아했고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교역자들의 분위기가 좋을수록 성도들이 교회를 섬기는 충성심도 나뉘지 않고 하나로 묶이는 좋은 교회로 자리 잡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다. 그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원로목사님의 개성이 너무 분명해서 담임목사를 청빙하는데 당회원들이 신경을 많이 쓴 것과는 달리 전혀 안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회원들이 아주 기뻐했다는 간증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은평교회는 개척자인 이정백 목사님의 사모님이 살아 계셨고 전임자인 전용한 목사님의 사모님도 같이 계셔서 은평교회는 목사 사모만 네 사람이 한 교회에서 교회를 섬기는 입장이었지만 이 사모님들과도 불편 없이 교회활동에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큰 잔치나 교회행사에 제일 우선으로 초청했고 대심방 때에도 자주 같이 심방하는 기회를 가지며 함께 어울리는 방법이 물질로 봉사하는 것보다 그분들이 더 기뻐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김홍순 원로목사님은 담임목사인 나를 알게 되고 내 마음을 이해하자, 6개월도 못 되어 주일 낮 예배마다 담당했던 축도 순서를 구지 사양하셨다. 그 뿐 아니라 잔치나 모든 일반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거절하고 원로 목사님의 활동범위를 아주 좁혀 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지고 말았다.
나는 김홍순 원로목사님을 예일학교 교목실장으로 계실 당시인 68세에 원로목사님으로 모신 후 75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8년 간 모셨다. 한 번은 사택으로 나를 불러서 심방을 갔더니 눈물을 닦고 계셨다. “무슨 언짢은 일이 계시냐”고 내가 묻자 정색을 하시면서, “내가 책장을 정리하고 싶은데 나는 목사 아들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누구를 주겠는가 이 목사도 책이 많지만 이 목사에게 없는 책을 다 뽑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나는 이 목사를 아들처럼 생각했다”고 말씀하시며,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시더니 많은 책을 내게 물려준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목사님의 모습이다.
/은평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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