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돈 목사 `회고록' 〈44〉나의 삶, 나의 목회

교회의 양적 성장은 예배당이 끼치는 영향이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차 성전 건축을 통해 예배당이 우뚝 솟아 멀리서도 은평교회를 볼 수 있었고, 빨간 벽돌로 규모 있게 예배당의 외모를 잘 갖추게 되어 새 가족들이 찾아오는데 아주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성전을 건축하는 데도 단순한 예배당이라는 조건 외에 하나님의 전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갖추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건축 속에 신학적인 의미를 포함하면 더 좋은 예배당이 될 수도 있다. 예배당을 여러 번 건축하면서 느낀 일이지만 예배당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재로 건축하게 되면 서민이나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는데 위화감을 느끼게 되어 대중적인 교회가 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도 있다. 어떠한 신분이나 어떠한 계층의 사람이라도 손쉽게 출입할 수 있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예배당이 인기 있는 예배당이고 사람들로부터 호응 받는 예배당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1차 성전 건축은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아주 성공적인 예배당의 기능을 잘 감당해 주었다. 그래서 성전건축 후 6, 7년이 지나자 700명을 전후한 출석교인으로 성장하게 되어 정말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목사는 풍요로운 강단을 위해 강해설교에 열중했고 모든 직원들과 성도들은 교회 부흥의 대세에 이끌려 교회가 좋고 예배당이 좋아 모이는 일에 충성하였다. 교회부흥은 이렇게 은혜로운 분위기만 되면 저절로 부흥하기 마련이다.
교회부흥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그 교회의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는 점이다. 잡음 없이 교회성장과 교회사역을 위해 한 마음 한 덩어리로 묶인 은평교회는 신기할 정도로 은혜롭게 성장해 갔다. 새로 등록한 새 가족들은 교회는 다 우리 교회와 같은 줄로 알고 있었고 전혀 신경 쓸 일 없이 은혜 받는 데 열중하고 교회생활에 충실하면 되었다.
결국 1차 성전을 건축한 후 10년이 지나자 900명의 신자로 성장하게 되어 교회는 3부 예배를 드려도 포화상태가 되었다. 교육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지하실과 1층 밖에 없어 모여드는 학생들을 수용할 길이 없었다. 취학부 어린이들만 800여 명이 모여들어 어린이 예배시간이 되면 시장판같이 소란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장년, 유년 모두를 예배당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게 되어 성전을 신축한 지 10 년 만에 성전을 증축이 아닌 신축을 해야 한다는 강한 요청이 온 교회 안에 팽배해졌다. 어린이나 장년이나 예배당을 다시 지어야 하고 크게 신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전체 성도들이 자진해서 성전건축의 필요성을 느끼고 성전건축을 위한 열정으로 무르익었기 때문에 쫓기다시피 성전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성전건축을 위한 일년 동안의 준비 기간에 들어갔다.
10년 전에 지은 건물이지만 교회 대지가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건물을 다 헐어내고 그 자리에 두 번째 성전을 건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아까운 건물을 헐면 되느냐? 헐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1988년 1월에 건축위원회를 거쳐 당회에서 건축헌금 작정을 결의했다. 2월에는 당회원들이 건축헌금을 정하고, 3월에는 직원들이, 4월에는 일반 성도들이 건축헌금을 작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회원들은 한 달 동안 더 준비기도를 하고 2월 당회에서 건축헌금을 작정하기로 기쁜 마음으로 결의했다.
 그리고 2월 첫 주일 예배 후 정기 당회가 열리게 되었다. 대표기도와 통성기도를 통해서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당회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기도를 마친 후 준비된 약정서를 당회원들에게 전달하고 기도 중에 마음에 정한 건축 헌금을 기록하였고 이 자리에서 건축헌금 약정서를 걷겠다고 말하면서 빨리 기록하여 내자고 권면했다. 그러나 당회원들이 건축헌금은 기록하지 않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재차 독촉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제일 나이 많은 장로님이 “목사님”하고 나를 부르더니 “건축헌금 정하기가 참 어렵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권하는 표정으로 “1년 동안 기도하고 또 한 달을 더 기도하여 마음에 작정을 했는데 뭐가 어렵습니까? 기록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때 그 장로님이 “목사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흡족한 건축헌금을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담임 목사님 마음에는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목사님이 아무개 장로 얼마, 아무개 장로 얼마, 아무개 장로 얼마, 이렇게 불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아멘, 아멘 하고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 말에 정말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장로님 개인의 의사지 모든 장로님들이 원하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자 그 장로님이 “목사님 우리가 당회에 들어오기 전에 이렇게 하자고 다 합의하여 결정하고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 엊그제 일같이 생각이 된다.
/은평교회 담임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